서울 용산역 뒤편에 자리잡은 용산전자상가.


80년대 중반 일본의 초대형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를 본떠 만든 국내 최대의 전자상가단지다.


현대식 양판점인 전자랜드와 컴퓨터 부품 및 조립PC 전문 선인상가를 축으로 나진상가 관광버스터미널상가 전자타운 원효상가 등지에 5천여개의 전자제품 가게가 몰려 있다.


이곳에서는 국산은 물론 외국산 전자제품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특히 컴퓨터와 관련된 것이면 완제품이든 부품이든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한때 '전자 유통의 메카'로 불렸던 용산전자상가는 설립된 지 약 20년이 지난 지금 위기에 직면했다.


TV홈쇼핑 인터넷몰 등 경쟁 상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장사가 신통치 않다.


요즘은 불황까지 겹쳐 성수기인 방학 중에도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3시 용산 전자랜드 3층.


북적인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제법 손님이 많다.


새 학기를 앞두고 PC를 보러 나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엔 DVD롬 LCD모니터 등 주변기기만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전자랜드의 한 상인은 "요즘은 컴퓨터를 새로 장만하려는 손님이 많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도 어지간한 프로그램은 다 돌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 상인은 "겨울방학 특수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며 "연중 최대 성수기라는 요즘도 매출이 월평균을 겨우 10∼20% 웃도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사회 전반의 소비심리 위축은 용산전자상가도 예외가 아니다.


"여유돈이 없는데 컴퓨터에 들일 돈이 어디 있겠느냐"고 상인들은 반문한다.


선인상가의 한 상인은 "외환위기 전만 해도 핵심 고객이던 대학생 손님이 최근 눈에 띄게 줄었다"며 "제품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컴퓨터 시장은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격비교 사이트들로 인해 가격정보가 노출되면서 상인들의 마진도 크게 줄었다.


손님들이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뽑아온 모델명과 가격을 들고와 제시하면 노련한 점원들도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가격비교 사이트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나진상가의 한 입점 상인은 "가격비교 사이트에 있는 터무니없는 가격정보를 들고 와 제품 값을 무작정 깎아달라고 요구하는 손님이 적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경쟁 상대가 많이 생겨난 것도 상인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강변 테크노마트나 서초동 국제전자센터에서도 용산과 비슷한 가격에 전자제품을 판매한다.


홈쇼핑과 인터넷몰은 특정 모델을 대량으로 구매해 덤핑에 가까운 가격에 팔기도 한다.


선인상가의 한 상인은 "손님을 끌어들이려면 예전보다 몇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전자상가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문화공간이 전무했던 이곳에 최근 멀티플렉스 영화관 랜드시네마가 들어섰다.


이 영화관을 운영하는 전자랜드 관계자는 "2백50석짜리 영화관 8개가 문을 열었고 주변에 패스트푸드점 등 식당가도 들어섰다"며 "랜드시네마가 용산상권의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랜드는 랜드시네마 개관을 계기로 용산전자상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최근 서울시내 보육원 어린이 1백50명을 초청,영화 무료 시사회를 가졌다.


앞으로도 불우이웃을 돌보는 행사를 수시로 열 예정이다.


용산역 민자역사 사업도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에겐 반가운 변화다.


내년 상반기 중 완공되는 용산역사에는 대형 할인점과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선인상가상인회 이병운 회장은 "용산전자상가가 '마니아들이 즐겨찾는 고급 전자상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며 "선인상가도 현대화 작업을 서두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