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은 입시전쟁을 치렀다. 3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6학년 학생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른 전쟁이다. 입학시험이라고 해서 6학년 학생들이 다 응시한 것은 아니다. 사립중학교와 일부 국립중학교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만 도전했다. 공짜로 공부시켜 주는 공립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유별났다. 28만7천여명의 6학년 학생이 있는 도쿄와,도쿄주변 3개 지방에서는 4만여명의 수험생이 사립중학교 입시를 치렀다. 숫자만 놓고 보면 사상 최대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사립중학은 교육비 부담이 살인적이다. 수업료 시설유지비 냉난방비 등으로 1년에 1백만엔(약 1천만원) 이상 들어가는 곳이 수두룩하다. 1학년 학부모는 기부금도 내야 하고,교복 비품장만에 1백50만엔 이상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4인 가족의 한달 평균 생활비가 30만엔 남짓한 보통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거액이다. 게다가 입시 준비를 위해서는 4,5학년 때부터 사설 학원에 월 7만~8만엔씩의 수업료를 쏟아붓지 않으면 안된다. 허리가 휠 것을 각오하면서도 자녀를 사립중학교에 보내려는 일본인 부모들이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교육의 질'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02년 4월부터 초등학교와 공립중학교의 토요일을 완전히 쉬는 날로 정했다. 어린이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며 교과과정을 손질하고,학습량을 약 30% 줄여버렸다. 안그래도 일본 학생들의 학력이 갈수록 뒤처진다고 걱정하던 학부모들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심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공립에 다니면서 대학에 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디플레이션 수렁 속에서 모든 경제활동이 위축된 일본은 물가 역시 뒷걸음질쳐 외국 서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교육비만큼은 예외다. 상승일로를 달린다. 해고태풍이 샐러리맨을 위협하고,주부들은 구멍 뚫린 가계부를 메우기 위해 취업전선을 기웃거려도 교육비는 구조조정의 성역으로 남아 있다. 공교육 부실의 폐해는 일본 서민가정의 삶의 질을 갉아 먹을 또 하나의 복병으로 등장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