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sh@hitel.net 의과대학 다닐 때 전설적인 교수님이 계셨다. 학문의 깊이는 물론이려니와 성품 또한 인자하셔서 찾아오는 환자로 항상 북새통을 이뤘다. 그 분은 진료하실 때 환자의 호소를 지루하리만큼 다 듣고 기록하셨는데,설명과 처방은 단호하리만큼 명료한 바가 있어 환자가 진료실을 나갈 때 절로 '읍'을 하게 되는 카리스마도 있었다. 언젠가 교수님이 휴가가신 사이 몇몇 환자를 전공의가 대신 보게 돼 같은 약을 처방해 줬더니,며칠 후 찾아와 "약효가 전 같지 않은데 혹시 약이 바뀐 것 아니냐"고 물었다. 확인후 "같은 약이다"고 했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교수님 오실 날을 묻고 돌아갔다. 나중에 그 말을 전해들은 교수님은 싱긋 웃으시며 "환자의 호소를 잘 들어줌으로써 반 이상 치료가 되었음을 명심하라"시며 "모든 환자가 '소중한 스승'"이라고 하셨다. 그 때는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시는 것은 아닐까 혹은 경험의 축적이 공부가 된다는 의미일까 단순히 생각했었는데,막상 진료에 임하는 의사가 돼 다양한 환자를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자의 호소 한마디,환자의 경과,환자의 쾌유 여부 혹은 합병증,임종 등등 모든 상황에서 의사의 역할을 올바르게 세우는 데 환자가 가장 큰 스승이 됨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의사도 성숙해짐을 깨닫게 됐다. 20세기 스페인 철학자 산타야나(Santayana)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 과오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고 한 말이 외과학 교과서 첫머리에 적혀 있다. 외과의사로서 그간 봐왔던 많은 환자들,특히 경과가 좋지 못했던 환자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발전할 수 있을까. 그분들이 나의 가장 소중한 스승이었기에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하며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낸다. 안타깝게도 그 교수님은 이제 세월에 몸을 싣고 고인이 되셨지만,환자를 소중한 스승으로 여기셨던 그 자애로운 모습은 항상 내 가슴속 깊이 각인돼 있다. 마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처럼 항상 내 가슴속에서 내 미래를 비춰주시길 염원하며 오늘도 흐트러짐 없이 환자를 소중한 스승으로 대할 수 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