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운드 농업협상에 짙은 먹구름이 끼었다. 13일 한국 정부는 하빈슨 세계무역기구(WTO) 농업위원회 특별회의 의장이 지난 12일 발표한 '뉴라운드 농산물 협상(도하개발아젠다:DDA)' 세부안과 관련, 농업 보조금인 추곡수매자금의 대폭 감축에 대해 수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참깨 마늘 등 고관세 수입 농산물의 '관세 대폭 감축'에 대해서는 '수용 불가'의 입장을 밝혔지만 어느 정도 관철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특히 쌀의 경우 정부는 쿼터제(수입물량제한) 수입방식을 관세화방식(관세만 정하고 물량은 무제한 허용)으로 바꾸는 것을 염두에 둔 '고율의 수입관세 부과'에 대해 WTO측이 눈감아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하빈슨 안은 한국의 예상과는 빗나가버렸다. 한국은 앞으로 협상에서 농산물 개발도상국 지위를 계속 인정받아야 쌀시장 개방폭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 전망은 아주 어둡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어서 농산물 분야에서만 개도국으로 계속 인정받는 것이 힘든 상황이다. ◆ 보조금 제안 수용 시사 13일 이명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하빈슨 의장 안은 한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농산물 수입국들이 제안한 것보다 농산물 관세 감축폭을 훨씬 증폭시키겠다는 내용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며 "다른 수입국들과 관세 감축 폭을 낮추기 위해 공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감축 보조금 대상인 추곡수매제에 대해선 다소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이 국장은 "보조금 총액을 규제하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방식을 견지한 점은 긍정적"이라며 "그러나 감축폭이 예상보다 높아 더욱 낮추는데 협상력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쌀은 어떻게 되나 안종운 농림부 차관은 "이번 초안이 개도국에만 쌀 등 핵심 농산물에 대해 예외적 고관세를 용인하는 만큼 향후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쌀 등 핵심 농산물에 대한 예외적 관세 우대를 개도국에만 적용할 것이라는 하빈슨 의장의 제안을 사실상 받아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당초 현행 쿼터제 수입 방식을 관세화 수입 방식으로 바꾸되 고율의 관세 부과를 통해 국내시장 개방을 최소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안 차관의 발언은 고율의 관세 부과를 전제로 하는 쌀 수입 추가 개방이 개도국 지위를 통해서만 가능한 이상 '개도국 지위 고수'로 전략을 선회한 것을 암시한다. 문제는 한국이 향후 협상과정에서 농산물에 대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데 상당히 불투명해 보인다. 한국은 선진국 그룹인 OECD 회원국이어서 농업부문만 예외적으로 개도국 지위를 계속 인정받기가 사실상 힘든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외줄 타는 농업 정책 김동태 농림부 장관은 14∼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WTO 비공식 각료회의에 참석,일본 농업장관과 별도의 양자회의를 갖고 DDA 농업협상 공동대응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농림부는 기본적으로 관세 감축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대 전선을 구축하고 보다 여유가 있는 보조금에 있어서는 회원국들의 눈치를 살펴 '레버리지'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하빈슨 의장의 초안 발표로 한국의 입지는 대폭 좁혀질 전망이다. 당초 정부가 식량 안보 목적으로 제의한 △핵심 품목에 대한 관세 감축 우대 △소규모 가족농에 대한 보조 △핵심 작물의 국내 생산 기반 유지를 위한 보조 등은 전부 개도국의 혜택 사항으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WTO 회원국들은 1차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후 3월25일 이전에 2차안을 제시하고 3월 말에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