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노 당선자의 '소신'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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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주변에선 요즘 노무현 당선자의 '소신 발언'이 화제다.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시대 상황에 대한 '역사 의식'이 짙게 담긴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서다.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다. 미국과의 자주적이고 대등한 외교 관계를 바라고 있다"(1월23일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
"수백년 변방의 역사를 극복하고 동북아 질서를 주도하는 새역사를 펼쳐야 한다.우리가 지역의 질서를 주도하고 동북아 국가들이 수평적으로 참여하는 자주적인 역사를 펼쳐나가자"(2월6일 인천 국정토론회)
"북핵문제는 한·미 공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이견이 없을 수는 없다. 공격에는 동의할 수 없다"(2월14일 한국노총 방문)
노 당선자의 이같은 일련의 발언에는 "한국이 주체가 돼 북한의 핵위기를 해결하고 북한을 경제공동체로 끌어들여야 동북아경제 중심국가 건설이 가능하다. 그래야만 21세기 동북아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강대국들에 휘둘렸던 구한말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역사의식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곱씹어볼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미국은 이런 노 당선자의 뜻과 관계없이 한반도 주변의 군비를 강화하면서 대북 공격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워싱턴을 다녀온 노 당선자의 특사는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무디스는 한국의 신용평가 전망을 하향조정했고,국내 주가는 잔뜩 짓눌려 있다.
역사의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노 당선자의 말이 국내외 투자자들을 위축시키고 한반도 정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미국을 자극해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게 만들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고양할 소신과 역사의식은 확고하게 간직하되,그걸 대외적으로 전달하는데는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다운 좀 더 세련된 외교적 수사(修辭)와 접근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노 당선자가 14일 한 석상에서 "우리의 역량만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국가위험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그런 '현실'을 깨달아나가고 있다는 얘기인지 궁금하다.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