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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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증거다.
그래서 소송관계인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증거에는 서류와 전문가들의 감정서,관련기관의 조회내용 등이 있으나 실제 재판에서는 증인신문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다고 한다.
증인신문이 법정의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법정에 서는 증인이면 누구나 "양심에 따라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이 있을 경우 법에 따라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는 선서를 한다.
현행법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며 이를 어기면 위증죄로 처벌받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증인들은 위증죄를 별로 겁내는 것 같지 않다.
설사 증언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해도 증인이 기억하는 대로 증언한 것이라면 위증으로 간주되지 않아서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의 위증사범은 사법정의를 훼손할 만큼 그 숫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재판정은 '거짓말 경연장'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엊그제 대검찰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지난해 기소된 위증사범은 1천3백43명으로 4년새 60%가 늘었다.
인구를 감안해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의 위증사범은 일본보다 무려 7백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증에 대한 불감증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국회에서의 5공청문회,한보청문회,IMF청문회를 비롯 국정원 도청의혹사건 등을 접하면서 공공연히 위증이 자행되는 것을 모두가 지켜 보았다.
요즘에는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을 놓고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위증이 정치권의 현안으로 등장해 있기도 하다.
미국 법정에서는 위증죄를 중형으로 다룬다.
위증이 인정되면 10년 이상의 징역형과 50만달러의 벌금형을 부과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의 위기로까지 몰렸던 것도 르윈스키와의 성스캔들보다는 국회에서의 허위증언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 위증이 만연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돈과 권력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해서일 것이다.
멍든 양심의 회복이 시급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