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는 여전히 차갑지만 간간이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에 봄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유난히 춥고 눈 내리는 날이 많았던 지난 겨울의 흔적은 깊은 산자락 속에나 남아있을 뿐이다. 새로운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듯한 산천의 보이지 않는 들썩거림에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까지 설렌다. 봄이 오는 소리는 저 멀리 남도 바다에서 먼저 들려온다. 육지의 끄트머리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남쪽 바다에서 봄바람이 불어와 가장 먼저 와 닿는 육지 마을이다. 이즈음 해남은 하루라도 빨리 봄소식을 들으려는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토말(土末)이라고도 불리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경은 온몸으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겹고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땅끝마을이라고 일컫는 곳은 해남반도 남쪽 끝 바닷가에 자리잡은 해발 122m의 사자봉 일대를 가리킨다. 사자봉 꼭대기에는 사방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전망탑이 있다. 다도해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 장소에서 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모두 볼 수 있어 관광명소로 인기가 높다. 전망대에서 동쪽으로는 완도군의 노화도와 보길도가 보이며 날씨가 맑은 날에는 멀리 제주도의 한라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진도,조도,관매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해질 무렵의 낙조가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전망대와 함께 이곳의 명물이 된 토말탑은 육지의 끝에 찾아왔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국토의 최남단인 마라도의 기념비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소이다. 토말탑까지 내려가는 계단의 경사가 급한데다 힘들게 발걸음을 옮겨야하는 수고로움도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흥을 막지는 못하는 듯하다. 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려 육지의 최남단에 위치한 사찰인 미황사를 향한다. 달마산(489m) 서쪽 중턱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뒤쪽으로 삐죽삐죽 솟아있는 바위능선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남쪽의 금강산"으로 불릴 정도로 산세가 빼어난 달마산 자락에 화려하기보다는 단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때는 암자 12개를 거느렸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대웅보전,응진전,요사채 등 몇몇 건물만이 조촐하게 남아있다.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세워진 이후 대선사들을 많이 배출한 절로도 유명하다. 절의 내력은 동쪽 동백숲 길을 따라 10여분 거리에 있는 부도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부도전과 서부도전으로 나뉘어 있으며 예술성이 뛰어나다. 또 다른 사찰인 대둔사는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졌지만 조선시대에 가서야 서산대사가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이곳에 두기로 한 이후부터 발전했다. 이전에는 남쪽 바닷가에 자리잡은 작은 절에 불과했고 두륜산의 옛 이름인 "한듬"을 따라 한듬사로도 불렸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럽혀지지 않을 곳이라고 예언했던 대로 이곳은 수 차례 난리를 겪으면서도 무사해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절로 들어가는 길 이름을 "구곡장춘"이라 부르는 것도 2km에 이르는 수백 년 된 나무숲 때문이다. 경내의 전각에는 추사 김정희,원교 이광사,창암 이삼만 등 명필들의 글로 편액을 만들어 놓았다. 고산 윤선도가 효종이 지어준 수원 집 일부를 떼어내 해남집으로 옮겨지었다는 녹우당도 볼거리.집 주변의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은행잎이 마치 비가 오듯이 날린다고 해서 이름지어졌다. 집 앞의 전시관에서는 윤선도의 친필로 된 "어부사시사"와 "어우가",윤두서의 초상화 등의 유물이 보관돼 있다. 집 뒤편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하면서 높게 자란 소나무 숲 속에서 느끼는 봄날의 느낌을 간직하는 것도 기억에 남을 만하다. 찾아가는 길=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광산IC로 빠져나온 후 송정-나주-영암을 거치는 13번 국도를 따라간다. 해남에서 13번 국도로 초호까지 간 후 다시 813번 지방도로를 따라 땅끝마을에 닿을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고속버스로 해남까지 가서 송호리나 땅끝(갈두마을)행 직행버스를 탄다. 갈두마을 입구에서 하차한 후 5~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기타 여행정보는 해남군청 홈페이지(http://haenam.jeonnam.kr)나 해남군 문화관광과(061-530-5228)에 문의하면 된다. 글=정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