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경영전문기자의 '경영 업그레이드'] 직급 인플레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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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창업한 K씨(40) 회사의 직원은 12명.
아주 작지는 않은 규모지만 K씨는 한번도 사장 명함을 가져본 적이 없다.
창업 때 만든 기획실장이란 직함을 그대로 쓰고 있다.
물론 사내에선 대표로서 권한도 있고 책임도 모두 진다.
"만나야 할 사람이 높아야 대기업 과장이에요.제가 사장이나 상무라는 직함을 쓰면 그쪽에서 부르기가 어떻겠어요.쉰살 될 때까지는 계속 실장으로 있을 거예요."
K씨의 사업이 잘되는 데는 이런 '낮추기' 전략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러나 K실장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오히려 '발에 채이는 것이 상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직급 인플레가 심하다.
작은 업체로 갈수록 정도가 더 하다.
90년대 말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긴 벤처기업 가운데는 직원이 다섯명밖에 안되는데 부장 1명을 빼곤 전부 임원인 회사도 있다.
최근엔 대기업에서도 30대 상무들이 속속 나와 직급 인플레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회사마다 직급을 높여달라는 직원들의 요구가 적지 않다.
다국적 컨설팅업체의 한 외국인 지사장은 해마다 12월이 가까워오면 30대 중·후반인 고참 컨설턴트들의 면담 요청이 부쩍 늘어난다고 말한다.
골자는 "송년회 모임에서 친구들과 만나야 하는데 나만 몇 년째 그대로 이사라서 얼굴이 안선다"는 것.
한 마디로 직급을 올려달라는 민원인 셈이다.
국내 컨설팅회사들의 경우 사장들 연령이 대부분 40대 초반이고 30대 중반을 넘으면 대부분 전무나 상무요,낮아야 이사다.
컨설팅 회사들이 직급을 높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프로젝트 참여 컨설턴트 명단을 보내면 "책임있는 임원은 한 명도 없이 애송이들만으로 하겠다는 거냐"며 불만을 보이는 업체가 적지 않은 탓이다.
그래도 정도가 심한 건 사실이라 컨설팅업체 임원들은 실제 나이를 가능하면 감추려고 애쓴다.
문제는 직급이 대외적으로 의미를 가질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거품이 낀 직급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일부 보수적 기업의 경우는 50대 고참부장도 여전히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새파란' 사장이나 상무는 상대하기도 껄끄럽거니와 신뢰를 주기도 어렵다.
직급은 자기가 주장할 때보다 남이 흔쾌히 불러줄 때 가치를 갖는 법이다.
유흥주점에 널린 것이 '상무'라는 사실을 새겨볼 만하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