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육로시범관광이 시작됐던 지난 14일 오후 5시께.북한 금강산 문화회관에 남북한 양측 사업자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역사적인 육로관광을 기념한 북한 고적대의 연주가 끝난 직후여서 그런지 참석 인사들은 감회 어린 표정이었다. 북한 아태평화위 리종혁 부위원장이 먼저 입을 뗐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오늘 새 봄을 안고 오셨습니다. 육로관광은 참으로 뜻 깊은 일입니다." 북한의 방종삼 금강산총회사 총사장은 "지난 98년 해로관광을 시작할 때만 해도 육로가 이처럼 빨리 열릴 줄은 몰랐다. 현대가 외길로 개척에 나선 덕분"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이에 정 회장은 "오는 길에 보니 동해선 임시도로 옆에 기본도로 공사가 많이 진행됐더라"라며 북한측의 성의에 감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덕담들이 지나가자 곧 우리 측의 주문 사항이 이어졌다. 조홍규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자동차나 자전거로도 쉽게 올 수 있어야 명실상부한 육로관광 시대가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고 정 회장은 "그러려면 많은 부분들이 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특히 '시정'이라는 단어를 두번이나 강조해 아직도 뭔가 미흡하다는 불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자리가 다소 썰렁해지자 방 사장이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북남간 경제협력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야 한다"고 다시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항공관광도 앞당겨야 한다는 조 사장의 주장에 대해선 "금강산 관광특구에 이미 통천 일부지역이 포함돼 있지 않느냐"며 너무 채근하지 말라는 투로 받아 넘겼다. 보기에 따라 양측이 약간의 신경전을 편다는 느낌도 들었다. 실제 양측은 예정됐던 공동 산행도 취소하고 15일 아침부터 사업관련 협상에 나섰다. 이미 정 회장과 리 부위원장 일행들의 얼굴에는 전날의 흥분이 사라져 있었고 관광객들이 자리를 비운 해금강 호텔은 어느새 회의장으로 변해 있었다.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지만 육로관광 성사는 그저 수많은 고비들 중 하나를 넘어섰을 뿐이라는 느낌이다. 금강산=조일훈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