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 다녀왔지.죽이더구만.1백17홀 돌았어.자네 각오해." "그 정도 가지고 어디서 까불어.난 일본 회원권 살거야." "이 사람아 그걸 왜 사나? 그냥 가도 맘껏 칠 수 있는데." 옆좌석 중년 남자들이 주고받은 얘기는 대충 이랬다. 물론 골프 얘기다. 태국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왔다며 자랑하는 남자,일본 골프장 회원권을 사겠다고 맞받아치는 친구…."1백17홀이 뭐예요?" 집사람도 엿들었는지 귓속말로 물어왔다. "엄청 많이 쳤다는 얘기지 뭐."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어쩐지 찜찜했다. '노무현 이펙트(effect·효과)'란 말이 생각났다. 며칠 전 백화점 임원이 들려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강남 부자들이 좀체 돈을 쓰지 않는데 이런 현상을 '노무현 이펙트'라고 한다는 얘기였다. 부자들이 돈을 쓰지 않는 것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백화점 임원한테 들은 부자들의 얘기는 이렇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부터 '입맛'을 잃었다. 지지했던 후보는 낙선했고 당선자 진영에선 틈만 나면 '부(富)의 재분배'를 거론한다. 부자들이 죄인이나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민다. 그래서 저녁뉴스도 9시20분부터 본다. 돈 쓰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돈을 쓰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쓰겠다.' 물론 이들의 주장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늘 선거가 끝난 뒤엔 후유증이 나타나고 시일이 흐르면 '상처'가 아물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지금 '노무현 이펙트'를 거론하는 것은 뭔가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전반적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된 가운데서도 '저물가·고성장'을 실현했다. 성장의 원동력은 수출과 소비였다. 특히 소비는 최근 수년새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새로운 축으로 등장했다. '앞으로 수출이 위축될 땐 소비가 우리 경제를 지탱해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말부터 소비가 급랭하고 있다.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가계대출을 억제하면서 소비자신뢰지수가 곤두박질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설 대목에도 지갑을 많이 열지 않았다. 이달에는 백화점 매출이 처음으로 1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에서는 예산을 서둘러 집행하겠다고 야단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이펙트'란 말이 나돌고 있다. 부자들이 돈을 쓰지 않거나 밖에 나가 쓰는 것은 결코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칫 '소비의 선순환'이 끊길 수 있다. 여유있는 사람들이 돈을 써야 이 돈이 서민층까지 흘러들어간다. 그래야 경제가 돌아간다. 돈은 '경제의 피'다. 피가 돌지 않으면 신체는 활기를 잃게 마련이다. 돈이 지나치게 일부 계층에 편중돼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맞는 얘기다. 우리는 그동안 '파이'를 키우는데 주력해왔다. 파이를 보다 공정하게 나누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노 당선자측이 부의 재분배에 관심을 두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노무현 이펙트'란 말이 나도는 걸 보면 쉬운 일은 아닌성 싶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의욕만 앞세웠다간 계층갈등만 키우고 부의 유출을 부추길 수도 있다. 부자들이 국내에서 돈을 쓰게 하는 것도 재분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마디 덧붙이겠다. 최근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이런 말을 했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 여가산업이 뜰 것이라고들 하는데 착각일 수 있다. 너나 없이 여행가방 싸들고 해외로 나가면 국내 관광지 유흥업소들은 파리 날릴 수 있다"고.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