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6일 경기도 안산시 중소기업연수원. 기자가 경제캠프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한쪽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렸다. 고깔모자를 쓴 일단의 무리가 형형색색의 피켓을 들어올리며 '손님 모시기'에 들어갔다. 샌드위치 간판을 목에 건 40대 아주머니와 앞치마를 두른 50대 아저씨가 연신 기자의 팔을 잡아끈다. 교사 일일장터 현장을 제대로 찾았는지 잠시 헷갈렸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이들과 교단에 선 근엄한 선생님의 모습을 좀처럼 일치시키기 어려워서였다. 행사장 안에는 댄스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골판지를 오려 만든 점포들이 눈에 들어온다. 복도를 따라 길게 펼쳐져 있는 가게의 아이템도 다양하다. 분식점 찻집 액세서리전문점... 이날은 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한 청소년 창업교육 프로그램 '비즈쿨(BIZCOOL)'의 교사연수 마지막날. 그동안 받았던 창업 교육을 몸소 체험해 보는 '일일 장터' 행사다. 경제교육기관 '데카(DECA)코리아'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50여명의 교사가 참여했다. 축제의 성격이 강하지만 일일찻집같은 기금 마련 이벤트와는 다르다. 교사들이 그동안 배운 창업교육 노하우를 총실험하는 현장학습이다. "조별로 창업준비 전에 CEO(최고경영자)와 CFO(자금담당 임원), CMO(마케팅담당 임원), CTO(기술담당 임원), 직원 등 역할을 나누지요. 물론 급료체계도 다릅니다."(데카코리아 안승환 대표) 이곳에서 쓰이는 화폐단위는 쿨(COOL). 장터의 노른자위 위치에 자리잡은 '비즈뱅크'가 발행한다. 맞은 편에 위치한 '비즈 캅(Cop.경찰)'은 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각종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고 있다. "아이템 선정과 부지 확보, 가격 설정, 마케팅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같은 업종이 많다 보니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특한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요."(여천실업고 조기호 교사) 행사장 복도를 따라 펼쳐지는 업체들의 마케팅 경쟁이 이채롭다. 찻집인 '국향'은 골판지를 이용해 기와집 분위기를 꾸몄다. 인테리어로 승부수를 던진 것. 인근에 위치한 '차사랑'은 40~50대 고객에 초점을 맞춰 암예방차를 내놨다. 녹차에 나름대로 비방을 섞어 만들었다. 비즈캅으로부터 과장광고에 대한 조사를 받았지만 무사히 통과됐다. '아빠의 깜짝파티'와 '비즈아트'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액세서리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교사들이 직접 만든 제품이다. 손님들이 북적이는 토스트 전문점 '토털 토스트'를 찾았다. 이곳의 CEO는 올해 비즈쿨 시범학교로 처음 지정된 양영공고의 박금순 교사(44). 이 장터의 유일한 여성 CEO다. 여성기업의 특성에 맞게 샌드위치 가게로 차별화했다. "원래는 임원들이 부침개를 강력히 추천했죠. 주 소비층이 30~50대이다 보니 샌드위치가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의견 때문이었지요." 박 교사는 부침개 업체가 많아 토스트로 차별화하기로 결심했다. 대신 '포장해서 집에 가져갈 수 있도록' 제품을 기획했다. 자녀들을 위한 선물 아이템에 초점을 맞춘 것. 식용유 대신 버터로 굽고 재료로 치즈와 피망을 사용하는 등 철저하게 10대의 입맛에 맞췄다. 포장지도 색 테이프를 이용해 선물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재료비가 부침개보다 덜 먹히는 덕분에 가격경쟁력도 좋았다. 그 결과 55인분을 준비했지만 시작한지 30분만에 30인분이 팔려나갔다.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박 교사는 학교로 돌아가면 학생들과 함께 장터를 다시 재현해볼 생각이다.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지만 경제교육에 대해서는 막막한게 많았거든요. 제품 선정,가격 결정,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기업 경영과 시장구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제주빙떡'도 탄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업체 이름처럼 제주 빙떡을 주 상품으로 내놓았다. 이곳의 CEO는 경제교육 25년 경력의 경남 자영고교 성수용 교사. "CTO인 제주일고 김찬정 교사의 아이디어였죠. 밀가루 대신 메밀을 사용하는 등 고급재료로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성 교사는 대신 고가정책으로 밀고 나갔다고. 가격이 일반 부침개의 두 배가 넘는 3만5천쿨이다. 하지만 입소문이 장터에 퍼지면서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성 교사는 이번 장터가 교사들에게 경제교육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줬다고 말한다. 경제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그동안 교재와 교육방법은 발전이 뒤처져 있었다는게 성 교사의 지적이다. "경제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부터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부교재나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안산=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