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저널리스트가 필자에게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를 비교하면서 서로 유사점이 많다는 얘기를 했다. 두 사람은 모두 60세 전후로 젊은이 못지 않게 패션에 민감하고 텔레비전을 통한 대중정치에 능하며,정치성향이 리버럴하고 개혁지향적이다. 또 자신이 속한 집권당은 물론 이익단체와 사회저항세력의 압력 때문에 정치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 현재 독일 국민은 이들 정치지도자의 스타일 외에 독일과 일본경제가 닮아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 불안해 한다. 독일은 일본의 뒤를 쫓아 10여년에 걸쳐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고용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또 디플레와 거액의 재정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도 일본과 비슷하다. 그러나 독일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경제적 위험은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일본과 경제구조가 닮았다. 가계 지출이 총수요의 약 60%를 차지하기 때문에 경제성장과 고용에서 소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소비가 줄고 있는 근본 원인은 한번 직장을 잃으면 임금이 괜찮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고용 상황이 악화되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기업들은 갈수록 신규 사원 채용을 꺼리고,종업원수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직원들이 나가면 내심 이를 반기는 상황이다. 이런 고용환경 속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의 채무를 갚을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역자산 효과'도 본격화되면서 소비위축을 부채질하고 있다. 독일의 주식시장은 3년전 고점과 비교해 현재 60% 가량 떨어졌다. 이는 10여년 이상 장기 증시침체에 빠져있는 일본과 매우 비슷하다. 독일 근로자들은 전통적으로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주식투자를 많이 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하이테크,미디어,통신주 등이 급등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을 주식시장으로 불러 들였다. 당시 투자했던 개인 투자자들은 투자원금의 90% 이상을 잃었다. 부실한 연금 제도도 일반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독일의 많은 노동자들은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보험회사들의 경영실적 악화로 보험 계약자들이 앞으로 받을 수 있는 보험액 수준은 약속된 금액보다 훨씬 적어질 것이 분명하다. 보험사가 보유 중인 주식의 시가가 크게 떨어지는 등 회사 수익전망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독일인들도 자신들의 채무를 늘리기보다 줄이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 이러한 생활패턴이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경제가 디플레에 빠질 위험성은 커지고 있다. 올 들어 유로화 가치는 급등해 독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일 입장에서 물가 안정이 중요한 과제지만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의 가격 지배력은 약해졌다. 더욱이 유로화 가치의 상승이 멀지 않은 장래에 끝날지,아니면 장기화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경제의 불투명성은 커지고 있다. 국내 수요부진과 유로화 변동 추세를 고려하면 독일을 시작으로 유로존 전체의 무역 및 경상흑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유로화 가치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 인하에 미온적인 것도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도 일본정부가 90년대 전반의 경기침체기에 정책 대응을 제대로 못했던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정리=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 -------------------------------------------------------------- ◇이 글은 일본 UFJ은행의 디터 벨무트 유럽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기고한 '독일과 일본의 유사점'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