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에 집결해 있는 출연연구소 및 벤처기업들에 이어 대전시가 대덕밸리를 '과학기술특구'로 지정해야 한다고 또다시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인천 송도를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ITㆍR&D 집적지로 만들겠다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하면서 이 문제가 촉발된 것이고 보면 차기 정부 스스로 분명히 매듭짓지 않으면 안될 과제가 된 셈이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대덕이 이런 요구를 하는 배경에는 지역이기주의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이 크다고 본다. '대덕을 R&D특구로 지정,동북아 R&D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은 민주당의 대선공약이지만 이것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대덕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30년이란 적잖은 세월이 걸렸다. 지방이라는 불리한 여건속에서도 정부의 지원과 과학기술계의 노력으로 그나마 고급인력이 몰려있고 연구인프라가 구축된 한국의 대표적 연구개발 집적지로 부상한 것은 큰 성과다. 물론 대덕이 실리콘밸리와 같으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갈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금융 시장수요 등 미흡한 요소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이 1950년대이고,여기에 스탠포드 대학의 역사까지 감안한다면 우리는 시간적으로 너무 성급한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리는 처음부터 정부가 주도하다보니 자생적인 동기나 네트워크 등을 미처 감안하지 못했던 탓도 크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대덕은 'R&D 하기 좋은 혁신집적지'로 나아가는 중에 있는,아직도 미완성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덕에 대한 별다른 고려없이 무턱대고 또 다른 국가 연구집적지를 만들겠다고 나선다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대덕이 상당한 한계에 봉착할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렇다고 새로운 집적지가 단기간에 성공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결코 그렇지도 않다. 혁신집적지가 물리적으로 모아만 둔다고 되는 게 아니란 것은 이미 숱한 사례들이 증명하고 있다. 자칫 될만한 것까지 망치는 꼴이 날 지도 모를 일이다. 서구와 달리 아시아 국가들에서 정부 주도적으로 연구집적지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데는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자원이 한정적인 데다 자생적인 여건 형성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무리도 적지않은 터에 정책의 일관성까지 상실한다면 성공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대덕의 30년 세월이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지방화나 지역균형발전도 아예 기대할 것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