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는 일본 언론에서도 최고의 핫 뉴스가 됐다. 18일 사고발생 직후부터 모든 신문과 방송이 현장에 온 시선을 집중시키고 최신 뉴스를 쏟아낸데 이어 다음날인 19일에도 관련소식은 일제히 머리기사로 올랐다. 일본 언론의 시각과 논조는 대체로 한 방향으로 모아졌다. 초대형 참사에 놀람과 유감을 금치 못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일본 지하철의 안전을 다시 둘러보아야 한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사상자가 수백명에 이르게 된 원인을 다각도로 추정,분석하는 한편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 지하철은 어떠할 것인가를 비교하는 기사도 빠지지 않고 들어 있었다. 언론은 한국의 사고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전망 하향 증시침체 등의 역풍에 휩싸인데 이어 사고까지 겹치면서 한국경제는 소비위축,사회불안 등의 먹구름이 짙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일부 신문은 그러나 사고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원인을 한국사회의 안전 불감증에서 찾는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번 사고가 초고속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한국의 마이너스 측면을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사고 원인은 방화였지만 돌발사고 발생시의 대피로 확보,유도시스템,사고확대 방지책의 결함 등이 얽히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한국특유의 '빨리 빨리'와 '대충 대충'식 일처리 수법이 낳은 대형사고의 예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을 곁들였다. 피해가 커진 원인에 대해 최종 결론이 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의 안전 불감증을 들먹인 이 신문의 보도는 너무 앞서 나갔다는 항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고현장과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에 가슴이 저린 한국 기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쾌한 처사다. 하지만 안전 불감증이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였다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기본에 충실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된다. 스캔들과 사고로 얼룩진 탓에 '실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일본 언론이 더 이상 입에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