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6년 "영웅본색"으로 붐을 맞았던 "홍콩느와르"는 홍콩의 중국반환이 단행된 97년 전후로 시들해졌다. 느와르의 토양을 제공했던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한 불안감이 수면아래로 잠복한 것이다. "소살리토"의 유위강과 신예 맥조휘감독이 공동연출한 "무간도"(無間道)는 돌아온 홍콩느와르다. 홍콩반환이후의 경험이 녹아 있음인지 이전의 느와르보다 슬프고 비극적이다. 예전에는 화려한 스타일로 암울한 현실이 어느정도 가리워졌지만 이 영화에선 스타일이 잦아들자 현실이 훨씬 삭막하게 부각된다. "무간"은 불교의 8대 지옥중 가장 고통스럽고 불멸의 존재인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뜻하는 불교용어. 폭력과 부패로 얼룩진 경찰과 사회,나아가 홍콩을 흡수한 중국을 은유하고 있다. 이른바 "일국이체제"(一國二體制)를 표방한 중국과 홍콩은 더이상 분리될 수 없다. 하나이면서 둘이며,둘이면서 하나다. 영화속 주인공들도 이같은 현실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경찰이 범죄조직인 삼합회에 박아둔 스파이 진영인(양조위),역으로 삼합회가 경찰내부에 심어둔 조직원 유건명(유덕화)의 정체성은 혼란스럽다. 이들은 경찰이자 범죄인이지만 동시에 (내부의 시각으로는) 경찰도 범죄인도 아닐 수도 있다. 양자는 자기 정체성 확보를 해결하기 위해 맞대결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이 영화에서 선악은 식별키 힘들 뿐더러 적어도 외양으로는 악이 완승한다. 때문에 "무간도"는 느와르영화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이다. 경찰과 범죄인들이 대결한 역대 느와르필름에서 선(경찰)과 악(범죄인)은 구분됐고, "선의 승리" 내지 적어도 무승부로 판가름났다. "영웅본색"만 하더라도 경찰과 범죄단체는 분명히 구분돼 있고 경찰 동생을 위해 범죄조직원 형은 개과천선을 결심했었다. 무간도의 주인공들에게 도덕적 판단은 더이상 없다. 삶에 대한 연민도 없다. 살아남은 자는 무간지옥의 고통을 계속 지녀야할 운명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이야말로 지옥고를 탈출한 승자임을 말하는 대목은 시사적이다. 이 세상에서 악의 위력은 선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인식에 바탕하고 있다. 양조위와 유덕화를 앞세운 이 영화는 지난해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등 외화를 제치고 지난해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21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