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입법미비가 낳은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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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도시의 상징이자 대중의 발이어서 시내버스와는 차원이 다른 교통수단이라고 평소 믿어왔는데…대구참사를 보면 이런 나라에 세금을 내고 개인과 가정의 안정을 위탁해야 하는지 정말 회의가 듭니다."
서울 S대학의 대학원생 김기태씨(25)는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다치게 한 대구참사를 TV화면을 통해 되풀이 보다 '가슴답답증'이 생겼다"고 하소연하면서 "월드컵에서 일궜던 자존심을 다 잃어버렸다"고 털어 놨다.
한 시민은 "대형 사고 때마다 허술한 방재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어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고 한탄을 늘어놓았다.
어이없는 참사에 대한 사실규명 조사가 진행되면서 시설물과 건축현장에 불에 타지 않는 불연재를 사용하도록 한 관련 법령이 현실과 한참 동떨어져 있어 사고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참사도 불이 난 지 불과 1분 만에 지하철의 내장재에서 엄청난 연기와 가스를 내뿜는 바람에 대부분 탑승객이 질식으로 목숨을 잃었다.
한심한 것은 지하철과 같이 움직이는 운반시설에 대해 불연재 사용을 의무화한 법령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지하철 건설을 관장하는 건설교통부나 자치단체 어디에도 지하철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불연재 사용을 제대로 정해놓지 않고 있다.
건교부가 지난 2000년 3월 마련한 '도시철도차량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도 예외는 아니다. 이 규칙에서 정부는 열차 차체에 불연성 소재 등을 채택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강력한 추진의지나 처벌이 뒷받침되지 않아 기껏 선언문 수준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정부가 나몰라라 하니 객차를 만드는 업체는 불에 타든 안 타든 비용이 적게 드는 소재로 제작하게 마련이다.
전국에 잠복해 있던 지하철 화재참사의 시한폭탄이 대구에서 터진 셈이다.
인천의 모 시민단체 회원 박태원씨(43)는 "어디 대구뿐이겠습니까. 억울한 생명들을 우리가 모두가 떠나 보낸 셈입니다.
살아 있는 게 부끄럽습니다"라고 자책했다.
김희영 사회부 기자 song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