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족은 '특별함'을 산다 .. '럭셔리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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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관심 있는 젊은 여성이라면 하나쯤은 갖고 있는 '파시미나'라는 제품이 있다.
멋스럽게 목 주위에 감거나 늘어뜨리는 이 얇은 천조각들은 캐시미어(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지대에서 생산된 양털)보다 한단계 좋은 품질의 천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캐시미어의 페르시아어인 '패시미나'에서 파생된 말인 파시미나는 양털 소재가 대형 할인점에서 팔릴 만큼 흔해지다 보니 좀더 고품격의 제품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가공의 개념일 뿐이다.
플로리다 대학의 광고학 및 영문학 교수인 제임스 B 트위첼은 '럭셔리 신드롬'(최기철 옮김,미래의 창,1만5천원)이라는 책을 통해 이와 같은 호사품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와 오해의 실체를 샅샅이 파헤친다.
저자는 경제 사회 역사 문화 등 여러 분야의 지식과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호사품의 역사와 이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호사 열풍(Luxury Fever)'이라고까지 불리는 호사품에 대한 욕구를 '베블런 효과'로 설명한다.
19세기 말 '유한계급론'을 쓴 베블런은 경제적 부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의 소비행동을 결정짓는 요인은 물건의 효용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자긍심을 느끼는 동시에 주위 동료나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값이 비쌀수록 호사품의 가치는 커진다는 게 베블런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의 LVMH와 같은 대형 호사품 기업들은 베블런 효과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들의 제품은 실제로 기계를 통해 대량 생산,소비되는 물건들이지만 광고와 마케팅에 의해 '특별함'이라는 이미지와 가치가 부여된다.
소규모 고급 부티크에서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팔릴 것 같은 호사품들도 사실은 중국의 한 공장에서 컴퓨터 제어시스템을 통해 재단되고 포장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호사품을 원하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어리석다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호사품의 대중화에서 자본주의의 민주성을 발견해낸다.
호사품 구매는 경제적 도덕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가문과 계급이 그 사람의 지위를 말해 줬지만 지금은 그 사람이 쓰는 물건의 브랜드가 그를 말해준다.
저자는 '그들이 사는 물건을 나도 살 수 있다'는 21세기의 믿음이 '죽었다 깨어나도 내 신분을 극복할 수 없다'는 19세기의 믿음보다는 공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