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1:18
수정2006.04.03 11:20
최태원 SK㈜ 회장이 검찰에 출두하던 21일 오전.손길승 SK그룹 회장은 서울 서린동 본사 34층 집무실에서 3분여의 짧은 시간동안 방영된 그의 모습을 TV로 지켜봤다.
손 회장은 질문공세에 시달리느라 표정이 굳은 최 회장을 지켜보며 매우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손 회장은 무엇보다 그를 국내 최고의 전문경영인으로 올라서도록 해준 은인이자 '사업동지'인 고 최종현 회장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지난 98년 최종현 회장은 타계하면서 그에게 그룹을 당부했고 손 회장은 지금까지 최태원 회장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전문경영인인 손 회장은 최 회장과 '파트너십 경영체제'를 구축,대주주의 독단을 방지하는 모범적 경영구조를 만들었다.이후 자산 33조원이던 SK그룹은 지난해 50조원 규모로 성장했으며 직원 1인당 순이익은 지난해 1억4천만원으로 재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성장가도를 걸어왔다.
SK의 순탄한 성장은 손 회장과 최 회장의 파트너십 경영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게 재계의 평가다.
SK는 또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했다.
JP모건과의 이면계약 등 논란을 빚자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주주인 최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기도 했다.
때문에 검찰 수사소식이 나오자 "왜 하필이면 SK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도 적지않았다.
압수수색 이후 언론과 숨바꼭질을 벌였던 손 회장은 지난 20일 공식행사인 전경련 회장단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은 얼어붙어 있었고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젊은 검사들이 잘 하고 있으니 수사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그의 말에는 최 회장의 소환과 사법처리를 막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와 '한탄'이 배어있는 듯했다.
회장단 회의와 만찬이 끝난 뒤 그는 언론을 피해 비상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호텔 현관을 나섰다.
승용차에 오른 손 회장은 전경련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기 위해 차창을 열었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물을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정태웅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