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장호라는 이름의 한 노인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통해 역사 속에 묻혀있던 재미 한국인 청년들의 활동이 드러났다. 1920년 캘리포니아 윌로스 지역에 한인비행학교가 세워졌던 것.한씨는 비행학교에서 활동한 마지막 생존자였다. 왜 그들은 이역만리 미국땅에서 전투비행훈련을 받아야 했을까? KBS 1TV에서 26일 밤 12시에 방송하는 수요기획 '도쿄를 폭격하라!1920년 한인전투조정사들'은 한인최초의 비행사와 비행학교의 실체를 밝히는 프로그램이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대 말 상해임시정부는 비행연대 창설을 계획했다. 그러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좌절을 거듭하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러한 임시정부의 노력이 "동경에 날아가 쑥대밭을 만들자"는 결의로 이미 비행사 훈련을 받고 있었던 미주 한인청년들의 독립전쟁 의지와 맞물리면서 결국 1920년 윌로스 지역에 한인 비행사 양성소를 탄생시켰다. 비행학교 설립에는 하와이 망명시절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노백린 군단을 창설한 노백린 장군과 캘리포니아에서 3백만평의 농장을 경영하며 쌀의 왕으로 군림했던 김종림씨의 역할이 컸다. 비행기를 통해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미주한인들의 열망은 노백린 장군을 통해 집결됐고 김종림의 전폭적인 자금지원은 학교 운영에 큰 힘이 됐다. 취재진은 한인비행학교의 흔적을 찾기위해 캘리포니아 윌로스로 찾아갔다. 그러나 80년이 넘게 방치돼 있었던 비행학교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연히 한인의 묘지 하나가 발견됐고 묘지 관리인으로부터 당시 한인들의 생활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또 비행학교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현지인 한 사람을 만나 역사속에 묻혀있던 한인비행학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