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구색만 갖춘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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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 1시30분 정부중앙청사 별관.
전날 저녁부터 계속 내린 비로 잔뜩 찌푸린 날씨처럼 얼굴에 어두운 근심이 드리워진 농민단체 대표 3명이 회의가 끝나자 마자 회의장을 급히 빠져나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 등 농업개방과 관련,국내 농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2시간 넘게 토론을 벌였지만 할 말을 다 못했다는 눈치였다.
사실 이번 간담회는 새 정부의 농업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요식 행위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선 통보 절차부터 그랬다.
인수위는 지난 19일 전국 농민단체들의 합의기구인 전국농민단체협의회에 간담회 성사 여부를 타진했지만 일부 재야단체들에는 회의 일정을 미리 통보,빈축을 사기도 했다.
한 농민대표는 "인수위 활동이 사실상 끝난 시점에서 이루어진 간담회라서 그런지 별 소득은 없었다"며 "잘 짜여진 '쇼'에 '들러리'만 선 기분"이라고 허탈해 했다.
특히 일부 농·어민단체는 활동을 중단한 곳도 있어 구색 맞추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 등 국내 농업개방과 관련된 난제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수위의 이런 매끄럽지 못한 행위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인수위로서는 전국에 있는 농민들을 찾아 일일이 설득하는 것보다는 정부 편에 있는 단체들을 뽑아 동의를 구하는 것이 훨씬 손쉬웠을 것이다.
노 당선자는 이날 "이제 농민들도 정책에 참여하며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농민도 스스로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어지럽게 엉켜있는 농업문제를 스스로 풀라는 경고메시지인 셈이다.
물론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새 정부는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전체 농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 때다.
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할 농민들의 가슴에 '들러리'만 섰다는 불신감이 스며들 경우 새 정부의 농업개방 정책은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임상택 사회부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