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영국과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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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언론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부시의 애완견'이라고 비꼰 데 이어 영국의 대중지 선이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벌레'로 묘사했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견해차가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1ㆍ2차 세계대전의 맹방인 두 나라지만 돌이켜 보면 갈등의 역사는 길다.
1백16년 동안이나 계속한 '백년전쟁'(1337∼1453)은 대표적인 예다.
명목은 왕위 계승, 실제론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인 플랑드르와 보르도를 중심으로 한 포도주 생산지 기옌 지방의 주도권 때문에 벌어진 이 전쟁의 상처는 실로 깊었다.
로댕(1840∼1917)의 조각 '칼레의 시민들'(영국군이 칼레를 점령한 뒤 요구한 6명의 희생자를 묘사한 작품)의 슬픈 모델이 생겨난 것도, 1429년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프랑스를 구원한 전사 잔 다르크가 등장한 것도 이 전쟁이다.
1805년 넬슨 제독이 지휘한 영국함대가 나폴레옹 1세를 사령탑으로 한 프랑스ㆍ스페인 연합함대를 대파한 트라팔가해전 또한 양국 모두 잊기 어려운 일에 속할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입장 외에도 두 나라가 의견을 달리하고 그 때문에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은 많다.
지난해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선 농업보조금 문제를 둘러싸고 설전을 벌인 끝에 시라크 대통령이 블레어 총리에게 "매우 무례했다"고 화를 내고 12월 프랑스에서 열기로 했던 회담을 취소했을 정도다.
급기야 일국의 정상을 애완견과 벌레로 칭하는 일까지 발생한 셈이다.
이라크전 문제로 촉발되긴 했지만 양국의 이같은 갈등은 유럽내 주도권을 둘러싼 오랜 자존심 대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프랑스가 서유럽 중심의 유럽연합을 구성, 미국에 맞서려 하는 반면 영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 아래 동구권 국가까지 모아 유럽의 주도국 위치를 쟁취하려는 데서 생겨난 일이라는 것이다.
자국의 세력과 이익 확보를 위해 끝없이 밀고 당기는 영국과 프랑스의 치열한 대결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