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취임] 노무현 정부가 풀어야 할 '7大 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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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산적한 경제 현안들과의 씨름에 팔을 걷어붙여야 할 것 같다.
막연히 확산되고 있는 '기업불안'은 이미 경제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기업인들은 '사정 한파' 속에서 설비투자를 미룬 채 권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회사와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시하고 있는 '북핵'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 해법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주5일 근무제, 신용불량자 급증, 조흥은행 매각, 투자신탁회사 부실 처리, 농업 서비스 등 분야의 뉴라운드(DDA) 통상 협상 등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꼽힌다.
[ 기업불안 ]
기업인들이 노무현 정부에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은 "실정법 위반이긴 하지만 과거에 관행으로 해왔던 사안들에 대해 어느 선까지 법의 잣대를 들이대 처벌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제한속도가 시속 60㎞인 도로에서 대부분 운전자들이 80㎞로 운전해 왔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갑자기 교통경찰관이 나타나 60㎞를 준수하라고 요구할 뿐 아니라 과거에 80㎞로 달렸던 행적에 대해서도 모두 조사해 처벌하겠다는 식 아니냐는 우려다.
연원형 자산관리공사 사장이 관행적으로 써온 임원 갹출금으로 인해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최태원 SK(주) 회장은 과징금이나 벌금 부과로 끝났을 사안으로 구속되는 사태를 바라보는 기업인들의 충격은 매우 크다.
새 정부가 연내 시행을 다짐하고 있는 증권분야 집단소송제와 공익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얼마인지, 세무.회계 기준이 강화되면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게 기업인들의 호소다.
[ 北 핵개발 ]
북한 핵문제 해결은 노무현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다.
본질적으로 정치적 사안이지만 동시에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직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현안이기도 하다.
무디스의 한국 신용등급 전망 하향 조정과 주식시장의 침체가 이를 방증한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과제인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을 위해서도 조기에 돌파해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분단과 전쟁 가능성 상존이라는 국가리스크를 안고 있는 한 아무리 '동북아 중심국가'를 외쳐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외면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법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정부간의 이견이다.
전쟁 가능성까지 고려하자는 미국과, 북한 공격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입장 차이 때문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이 전쟁을 포기하는 안'을 만들어 양자를 설득하는데 성공하면 국가리스크를 크게 낮추는 것은 물론 순식간에 남북관계의 급속한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주5일근무 ]
새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주5일 근무제 도입과 대규모 춘투(봄철 임금.단체협상), 두산중공업 사태 등 굵직한 노동계 쟁점에 직면할 전망이다.
이들 현안에 대한 대응 방향을 통해 새 정부의 노동정책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주5일 근무제는 노사간의 불만을 조율하는 동시에 기업 경쟁력 약화 등 제도 도입에 따른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보완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과 노동비용 상승 여파로 경영여건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떠안게 될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다.
'춘투'를 전후해 노동운동이 거세게 불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원 분신으로 촉발된 두산중공업 사태는 아직 해법을 못찾고 있다.
발전회사 매각과 가스산업 구조개편과 관련된 공기업 노사분규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새 정부가 노동자 권익 향상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이를 틈탄 노동계의 강경 투쟁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신용불량자 ]
지난 1월 말 현재 전국의 개인 신용불량자 수는 2백74만1천명에 달한다.
국내 경제활동인구 8명 가운데 1명꼴이다.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대구시 인구(2백50만명)보다 많은 인원이 신용불량의 늪에 빠져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갖가지 대책을 내놨음에도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불량자는 1월 중에만 10만6천명이 늘었다.
외환위기 때도 한 달 평균 8만명을 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증가 속도다.
은행이 정상적으로 영업한 날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하루 5천명이 새로 신용불량자로 등록됐다.
이런 추세라면 3∼4월께면 신용불량자 수가 3백만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잇달아 '가계신용 대란'에 대한 경보음을 울리고 있다.
또 다른 경제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경고다.
개인워크아웃제가 도입되고 가계대출 완화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신용불량자 수가 오히려 급증한 만큼 새 정부로서는 보다 강도높은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 조흥銀 매각 ]
조흥은행 매각은 전임 정부의 은행 민영화 작업중 '완결판'으로 꼽히면서 정권 말기 들어서 의욕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노조의 반발과 대통령 선거라는 시기적인 복잡성까지 겹쳐 매각을 매듭짓지 못했다.
때문에 새 정부의 처리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월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중 하나인 미국 무디스사 신용평가단이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내방했을 때 맨 먼저 "조흥은행 매각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었을 정도로 해외에서도 관심이 크다.
정부의 구조개혁 의지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라는 것.
그러나 매각 성사 여부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지난 1월23일 신한금융지주회사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지정되긴 했지만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노조 관계자들을 만나 직접 해결 방안을 논의한 데다 이 때문에 제3자 자산평가를 다시 진행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또 자산평가를 실시하던 안건회계법인은 최근 중도에 작업을 포기, 신한회계법인이 다시 나서게 되면서 매각 작업은 점점 꼬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새 정부가 내년 4월 있을 총선 때문에 노조와의 마찰을 피하고 있다"며 "조흥은행 매각이 장기 미제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 투신부실 ]
현투증권 한국투신 대한투신 등 투신 3사의 부실 규모가 증시 침체와 맞물려 날로 커지면서 공적자금 수요만 늘리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공적자금을 추가 조성하기 어렵고, 따라서 당장 투신권의 강도높은 구조조정은 곤란하다'는 기존 정부의 소극적 조치로 인해 지금껏 처리가 지연돼온 탓이다.
미 푸르덴셜그룹과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는 현투증권은 2년째 뚜렷한 진척이 없는 상태고, 대한투신과 한국투신은 7조9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받았지만 아직 회생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를 대표하는 투신권이 부실에 허덕이면서 증시를 억누르고 있고, 이렇게 가라앉은 증시는 다시 투신권 부실을 확대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며 "(공자금 투입여부에 대한) 조속한 매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DDA 협상 ]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전세계 무역지도를 새로 그리는 '도하개발아젠다(DDA.일명 뉴라운드)' 핵심 쟁점에 대한 협상 틀을 짜게 된다.
한국의 가장 큰 관심사인 농업 분야는 다음달 말까지 협상 세부원칙을 확정한 뒤 오는 9월 제5차 각료회의 이전까지 국가별 이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서비스 분야는 다음달 말까지 양허(시장개방) 계획안을 내야 한다.
비농산물 분야에서도 오는 5월 말까지 관세인하방식을 포함한 전체 협상방식이 결정될 예정이다.
이 중에서도 새 정부 통상협상 능력을 검증하는 첫 시험대는 농업분야가 될 전망이다.
지난 13일 발표된 농업협상특별위원회의 1차 의장 초안은 높은 관세를 부과 중인 농산물의 관세를 대폭 감축하자는게 뼈대로 한국 등 수입국에 불리하게 짜여졌다.
특히 쌀 등 핵심 주곡에 대한 예외적인 고율 관세 혜택도 개발도상국에 한정,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보장받지 못할 경우 쌀시장 대폭 개방이 불가피해졌다.
따라서 농업 분야의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와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하는가가 새 정부 통상분야의 최대 당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승윤.김수언.정한영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