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1운동의 재발견 .. 李萬烈 <숙명여대 교수.한국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3.1운동은 1919년 3월1일부터 거의 1년간 계속된 국내외 한국인의 항일독립운동을 총칭해서 말한다.
당시 일제의 축소된 통계는, 50명 이상의 시위사건만을 계산했는데도 1천5백24회의 집회에 2백2만3천여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1년간 1천만명이 넘는 국민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고 전했는데,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3.1운동은 처음에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을 표방했다.
하지만 무차별 학살과 방화로 맞선 일제는 7천5백여명의 학살에 1만5천9백여명의 부상과 4만6천9백여명의 체포.투옥, 47개의 교회당과 2개의 학교, 그리고 7백15채의 한국인 민가를 소각했다고 축소된 통계를 발표했다.
3.1운동은 일제 식민통치의 기만성과 허구성을 폭로했다는 점에서 먼저 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강점 후 일제는, 한민족이 나라를 빼앗기고도 분통해할 줄 모르는 '열등민족'이라느니,일제의 '개혁정치'에 열복(悅服)하고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면서 자신들의 기만적인 식민통치를 호도했다.
그러나 3.1운동은 강점 10년간의 일제 '개혁정치'의 본질이 무단통치였고, 한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한 수탈통치였으며, 한민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민족말살통치였음을 행동으로 외친 사건이었다.
3.1운동 이후 일제가 형식적으로나마 무단통치 대신 문화통치를 표방했던 것은 강점 후 10년간의 통치 자체에 심대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3.1운동은 전 민족적 규모의 자주독립운동으로 한국의 근대민족운동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전기를 마련했다.
한말 이래 전개된 양반층의 척사위정계.개화운동계와 민중층의 반제.반봉건적 민족운동은 서로간의 반목과 갈등으로 일제 강점 초기까지 거의 활성화되지 못했다.
3.1운동은 이같이 분열된 민족운동을 새로운 차원의 독립운동으로 승화시켰다.
3.1운동으로 자신감을 얻은 민족운동 세력은 임시정부 운동을 비롯 만주.러시아에서는 무장투쟁을 강화해 청산리 대첩과 봉오동 승리를 가져 왔고, 국내에서는 실력배양운동을 적극화해 민족운동을 전 민중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3.1운동은 또 한국의 민주공화정 수립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1운동 이전의 국권회복운동은 왕조를 다시 회복하자는 복벽운동이 주류를 이루었다.
3.1운동은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라는 민주공화정 이념을 제시했다.
이것은 군주정치와 영원히 이별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운동을 추동(推動)시켰다.
3.1운동의 민주공화정 이념은 상해 임정을 통해 구체화됐고, 모든 국민이 평등권과 자유권을 가진 주권자로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끝으로 3.1운동은 한민족운동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의 반제국운동과 약소민족해방운동에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3.1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후 강대국에 의해 재편된 베르사유 체제에 도전한 최초의 저항적 사건이며, 당시 새롭게 등장하고 있던 강권.패권주의에 맞섰던 세계사적 운동이다.
그 여파는 약소국가들의 독립운동에 미쳤다.
중국의 5.4운동을 비롯해 인도 국민회의파의 비폭력 독립운동, 인도차이나 반도.필리핀.이집트의 독립운동 등 동방식민지 국가의 민족해방투쟁은 3.1운동에 적지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된다.
한 사건이 시간 속에 매몰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후세의 기억 속에 각인되고 또 그 의의를 재발견할 수 있게 될 때, 그것은 사건의 차원을 넘어서서 역사로 된다.
시간 속에서 사라지고 죽어버린 단회적(單回的)인 사건이 아니라,기억 속에 재생되고 생동하는 역사로서 자리잡는다는 뜻이다.
20세기 한국사가 크게 의지하고 있는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민족사와 세계사에 확산될 수 있다.
지금도 식민지의 유산으로 안고 있는 분단의 아픔과, 오만한 강대국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혀지고 있는 약소민족의 아픔은 평화를 위협받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다르지 않다.
21세기를 고민하면서 새 정부를 등장시킨 우리 세대는 이 아픔을 공유하면서 3.1운동의 의의를 민족사와 세계사에 구현할 과업을 안고 84회 3.1절을 맞는다.
< mahnyol@sookmyu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