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장관들이 발표되자 반응이 미묘한 부처들이 적잖은 것 같다. 새 정부의 동북아 경제중심,기술혁신,신성장전략 등의 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도 예외는 아니다. 재정경제부 출신 산자부 장관 임명을 놓고 '우리 업무는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건가''우리가 무슨 재경부 외청이냐'라는 볼멘소리도 없지 않았다고 하니 마치 무슨 낙하산 인사를 당했다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과거 재경부 출신 산자부 장관들에 대해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 때문에 더 그랬을지 모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기부 정통부는 어떨까. 과기부의 경우는 사실상 과기부에 크게 의존하는 연구소의 수장이 장관이 됐고,또 정통부는 민간기업에서 장관이 발탁됐다. 겉으로는 뭐라 표현하지 않아도 그들도 내심으로는 자존심(?)이 상했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모두 자존심이 상처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과기부 정통부는 그래도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물론 이것은 민간 인사들에게 자리를 내줌으로써 얻은 대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든 연구원의 원장이,민간기업의 CEO가 장관으로 올 수 있다는 생각은 조직의 손익계산서에 손해인 것만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언젠가 재경부 출신 과기부 차관은 '과기부 공무원들도 공무원 맞느냐'는 얘기를 했다. '덜 관료주의적'이란 것인데 장관 인사 행태의 영향이 컸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라도 이들 부처가 '시대적 생존조건'을 찾는다면 그것도 조직의 경쟁력이다. 반면 산자부는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한때 누구는 과거 상공부 장관의 자리를 '화려하다(colorful)'고 표현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실물과 산업 그리고 기업의 논리'로 '화려한 정책 논쟁'을 벌이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영역을 봐도 그렇다. 무역통계만 집계하라는 것인지 '화려한 통상협상'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산업과 기술의 경우 전통 제조업만 쳐다봐야 하는 건지 '화려한 신산업과 신기술'은 정통부나 과기부 등과 맞부딪쳐야만 한다. 그나마 에너지 분야가 있어 유가가 오르기라도 하면 잠시 화려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지나가고 나면 그만이다. 산자부는 지금 장관 인사의 문제를 넘어서 '정체성의 위기'다. 그리고 그 위기는 무슨 영역 차원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문민정부 이후 산자부의 정체성이 뭐였나를 생각하면 특히 그러하다. 노동자의 관점에서 일단 생각해야 한다는 신임 노동부 장관의 취임사는 보기에 따라서는 그 나름대로 부처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산자부는 앞으로 누구의,무슨 관점에서 그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할까. 답을 알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