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를 보면 인기직업 내지 유행직업을 짐작할 수 있다. 벤처 열기가 한창일 땐 벤처사업가,건축 관련업이 괜찮을 즈음엔 건축가와 실내디자이너,애완동물 붐이 일면 수의사가 나오는 식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이후 한동안 요리사가 뜨더니 금방 쑥 들어가고 다시 교수 검사 변호사 의사 약사가 대거 등장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건 말뿐 여전히 '사(士)'자 붙은 직업이 우대받는 셈이다. 요리연구가는 많아도 정작 이름을 알 만한 요리사는 없다시피 하고 긴 세월 사랑받는 식당이 드문 것도 이런 풍토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 추천할 만한 식당은 찾기 어렵고 어쩌다 괜찮은 식당이 생겼다 싶으면 얼마 못가 주인이 바뀌거나 없어지기 일쑤다. 손님 접대나 연말연시 모임 때 호텔 식당을 예약하는 것도 실수를 줄이기 위한 차선책인 수가 많다고 한다. 이런 만큼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의 평점이 떨어진 데 비관, 자살한 프랑스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52)의 장례식에 문화부장관이 애도성명을 내고 수천명의 조문객이 몰려들었다는 소식은 놀랍기만 하다. 프랑스에선 지난해 11월 빵의 명장 리오넬 푸알란(57)이 사고로 사망했을 때도 총리가 애도성명을 발표하고 언론이 추도특집을 내보내는 등 온 나라가 아쉬움을 표명했다. 유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바로 이런 투철한 직업관과 그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야말로 세계적 디자이너를 비롯한 뛰어난 장인을 배출하는 바탕이다 싶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일,할 수 있는 일,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다른 데도 우리는 여전히 학력과 간판 위주 사고에 시달린다. 빵을 만들건 고기를 굽건 자신의 일에 대한 집념과 책임감이 넘치고 사회 또한 그에 대해 애정과 존경을 아끼지 않는다면 적성에 상관없이 죄다 법대 의대 상대로 몰려가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직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바뀌고 그래서 각자 원하는 일을 긍지와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을 때 근사한 요리사도 늘어나고 멋진 식당도 생기고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연출자도 배출될 게 틀림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