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장이 한국 기업들에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98년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으로 파탄지경까지 몰렸지만 최근엔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제2의 중국'이란 평가까지 얻고 있다. KOTRA 모스크바 무역관에 따르면 현지 지·상사협의회와 러시아 진출 중소기업협회 등 공식단체에 등록돼 있는 한국 기업만 1백여개에 달하며 등록되지 않은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약 5백여개사가 진출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붐' 재현되나=모라토리엄 선언과 함께 90년대 후반 발길을 뚝 끊었던 한국 기업들이 다시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수는 약 5백여개. 대기업은 모스크바 쪽으로 많이 진출해 있고 중소기업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극동지역에 포진해 있다. KOTRA의 경우 지난해 모스크바에서만 13차례나 수출상담회를 열었고 러시아 구매사절단을 한국으로 초청해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양국간 교역규모도 꾸준히 늘고 있다. 대러 수출규모는 지난 99년 6억3천만달러였지만 지난해엔 10억6천만달러에 이르렀다. 관련 업계는 이같은 추세라면 90년대 초반 북방외교로 조성됐던 '러시아 붐'이 10년 만에 재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현재 진행중인 나호츠카 한·러 공단건설과 러시아 통신망 현대화 사업 등을 계기로 한국 IT중소기업의 러시아 진출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U턴 기업 확산,투자진출 확대=한국기업들의 진출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철수했던 기업들이 재진출하는 것과 개점 휴업 상태였던 지사를 강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11월 모스크바 지사를 재개설했고 우리은행은 3월에 지점을 개설할 예정이다. 또 한국수출보험공사와 한국관광공사도 곧 주재원을 파견한다. 현지 생산·판매·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 93년 러시아 사업소를 개설한 한국야쿠르트는 현지에서 도시락 라면의 인기가 급상승하자 원가절감 등을 위해 현지 생산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칼리닌그라드에서 SKD(반제품조립)생산을 시작했고 롯데그룹의 러시아 현지법인 'L&L'은 지난해 10월 모스크바 번화가 6천여평 부지에 23층 규모의 롯데센터 기공식을 가졌다. 모스크바에 서비스센터와 연구소를 두고 있는 삼성전자는 러시아 내 최고가전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굳히기 위해 장기적으로 현지 생산 및 판매체제를 갖추고 기존 연구소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러시아 매출규모는 7억달러(해외생산분 포함)로 전년대비 60% 가량 늘었다. 모스크바,상트 페테르부르크,블라디보스토크 등 3개 지사를 갖고 있는 LG전자도 올해 전자레인지 부문에서 '국민 브랜드'에 선정되는 등 대표 가전브랜드로서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동양제과와 롯데제과도 현지 소비자들의 인기에 힘입어 생산공장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배경=러시아는 인구 1억5천만의 큰 내수시장을 지니고 있고 천연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고급 과학기술 인력이 많기 때문에 생산 및 소비 양측면에서 중국과 견줘 손색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럽연합(EU) 시장과 인접해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양국의 산업구조가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이다. 제조업체들의 중국 러시가 이어지면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지만 러시아는 이같은 우려가 적다는 지적이다. 이광희 KOTRA 모스크바 무역관장은 "멀지않아 중국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러시아 붐'이 일 것"이라며 "무역관에서 시장개척단 참가,조사대행 등 마케팅 세일즈를 지원하고 있는 국내 업체수만 해도 2001년 2백44개사에서 지난해엔 7백20개사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