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경기진단] "부자들까지 지갑 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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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운이 완연하지만 백화점 할인점 등 대형 유통매장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는 아직도 "겨울"이다.
지난해 4.4분기부터 얼어붙기 시작한 소비심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국-이라크 전쟁과 북한핵 문제까지 소비심리에 영향을 미치면서 현장에선 "부자들마저 지갑을 열지 않는 분위기"라는 말이 들릴 정도다.
지난 4일 오후 5시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겨울 의류가 물러간 자리에 화사한 봄 옷이 진열돼 있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하 식품 매장이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러 나온 주부들로 북적이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김혜민(44.서초동)씨는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돈 쓸 기분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 "비싼 물건은 사지 않더라도 먹거리를 줄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의 2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7.6~10.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월은 백화점 비수기인 데다 올해의 경우 설 수요가 1월에 집중된 탓이라지만 봄 신상품 매출과 신학기 선물 수요가 예년만 못했던 것도 실적 부진의 큰 이유였다는 설명이다.
지난 1월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백화점들은 이달초 1월 매출이 새해 첫세일과 설 특수에 힘입어 4.8~9.2% 정도 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신장률은 이보다 다소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1월과 2월 합산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강남지역 백화점들도 올해 설 판촉기간 매출이 크게 늘지 않았다"며 "소비는 심리라는데 이런 분위기가 상반기 내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말까지 매달 10~20%대의 높은 매출 신장세를 보여온 할인점들도 이젠 "화려한 옛날"을 그리워하는 처지가 됐다.
신세계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빅3" 할인점의 지난달 기존 점포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13.5%나 하락했다.
할인점이 백화점보다 경기에 덜 민감한 업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하락폭이 컸다.
할인점 1등 업체인 이마트의 경우 올해 1~2월 기존점의 매출은 5~6% 증가하는데 그쳤다.
지난해 이맘때엔 2001년 동기보다 매출이 10% 이상 늘어난 것에 비하면 신장세가 크게 둔화된 것이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에선 지난해보다 매출이 감소하는 점포도 나오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매출 비중이 큰 가전을 중심으로 유아복 잡화 등의 매출이 부진한 상황"이라며 "점포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이젠 지난해와 같은 높은 매출 신장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소비경기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백화점들은 지하 식품매장을 일본식으로 뜯어 고치고,지방 점포엔 명품을 대폭 보강하는 고급화전략을 펼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은 오는 5~7월까지 잠실 강남 영등포 분당 노원 대전점 등 6개 점포의 지하 식품매장을 리뉴얼한다.
신세계도 강남점과 같은 고급 식품매장을 다른 점포로 확산시킬 방침이다.
그랜드백화점이 운영하는 할인점 그랜드마트는 오는 20일까지 전 점포에서 8시 이후에 7만원이상 구매하는 고객에겐 3천원권 식품구매권과 라면 1박스(10개)를 주는 행사를 벌인다.
소비자의 발길을 잡기 위한 자구책의 하나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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