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개발은 용인될 수 없습니다.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한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이 원하는 많은 것을 제공할 것입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할 것인지,체제안전과 경제지원을 약속받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아울러 저는 북한 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자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노 대통령의 제안처럼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북한이 선선히 핵개발계획을 포기한다고 나올 것 같지 않다. 미국은 군사적 긴장의 고조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북한의 핵 개발을 포기하게 만들 작정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북핵문제는 민족의 안위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따라서 필자는 핵문제의 문외한이지만 민족의 성원이자 경제학자로서 북핵문제에 대해 갖는 몇가지 의문을 진솔하게 개진해 공론화할 필요성을 느낀다. 첫째,우리 정부는 미국과 북한의 궁극적인 의도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정부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미국이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9·11 이후 전례없이 강경해진 미국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 추진하면 이라크 사태가 끝난 후 국지공격을 가할 확률이 꽤 높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현 북한체제는 '대돌파'가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 따라서 핵 개발을 계속 추진해 막바지에 대돌파가 가능할 정도의 막대한 지원을 받음으로써 핵 개발을 포기하든지,이판사판으로 핵 개발을 강행하든지 할 것 같다. 이 둘 중에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는 막바지 벼랑 끝에 가서 결정한다는 것이 북한의 궁극적인 의도가 아닐까. 미국은 벼랑 끝에 가서 북한이 전자를 택하면 자기 지원몫을 가급적 적게 하고,후자를 택하면 국지공격을 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의도가 아닐까? 또는 김정일정권을 믿지 않기 때문에 벼랑 끝에 가는 것 자체가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일단 일을 저지르고 나면 세계경찰의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함직 하지 않은가? 둘째,우리 정부의 궁극적인 입장은 무엇인가? 이미 논란이 된 것처럼 북한이 핵 개발을 강행할 경우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보다는,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것이 낫다는 식으로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북한이 핵을 보유한 후 경제와 체제가 불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엉뚱한 요구를 해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경우 전쟁의 위험없이 자유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핵 보유 이후의 전쟁 위험은 핵시설을 파괴함으로써 생기는 전쟁 위험보다 더 가공한 것이 아닌가? 셋째,우리 정부의 현재 입장은 바람직한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미국과 우리의 공동목표다. 협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강온 양면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게임이론과 협상의 기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말을 외고 있다. 이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벼랑 끝까지 가는 것이 체제안전과 경제지원의 약속을 더 크게 받아내는 길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냉전적 사고로 부질없이 온갖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몰아붙일 일이 아니다. 경제학은 불확실성 하에 의사결정을 할 때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비하는 비상적기계획(contingency plan)을 세워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핵문제에 관한 한 '확신범'이자 게임이론의 대가이고,미리 샅바싸움을 치열하게 하는 협상의 달인(達人)들이다. 어느 쪽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민족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중재역할을 하겠다'는 우리 정부는 순진하고 대책없는 협상의 아마추어로 비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경제이론과 게임이론이 가르치는 대로 모든 경우의 수에 최선으로 대응하는 비상적기계획을 세워 국민의 불안을 덜어 주어야 한다. ksah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