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일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 새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달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와 비밀리에 만난 것으로 5일 밝혀졌다. 이에 따라 라 보좌관이 누구를 만나 뭘 논의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라 보좌관의 대북 접촉은 갈수록 악화돼가고 있는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새 정부가 대북정책의 투명성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라 보좌관의 '대북 비밀접촉'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뭘 논의했나=라 보좌관은 이번 접촉에서 새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설명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북측의 견해와 반응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라 보좌관이 이번 접촉에서 북측에 2차 남북정상회담을 조속히 열자고 제의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5월께로 예상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북핵 포기 대가로 북한에 대대적 경제지원을 한다는 내용의 '빅딜'을 모색하는 방안이 논의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라 보좌관은 "남북 현안에 대해 협의했지만 북핵 문제와 정상회담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 보좌관은 또 "북측 전금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났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대북 채널은 있어야 한다는 국익 차원에서 사적으로 베이징에 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문제가 거론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북 현안을 논의하면서 최대 이슈인 핵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도 신빙성이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투명성 논란=청와대는 이날 대북 접촉의 구체적인 목적이나 내용,접촉 상대자에 대해 함구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접촉 당시 외교관(주영대사) 신분이었던 라 보좌관이 접촉 전이나 후에 교류협력법에 따른 신고를 했는지에 대해 "보고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북 접촉의 자격과 절차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셈이다. 라 보좌관의 비밀 접촉은 특히 투명한 대북 정책을 추진하겠다던 노 대통령의 약속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라 보좌관이 비밀 접촉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도 관심이다. 청와대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라 보좌관이 접촉에 앞서 지난달 17일 노 대통령(당시 대통령 당선자)을 만났던 점으로 봐서 보고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홍영식·김병일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