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BC 448?∼380)는 비극 일색의 고대 연극계에 희극이라는 새 장르를 만든 인물이다. 그는 기발한 발상과 노골적인 대사,시종일관 배꼽을 쥐게 하는 내용을 통해 인간 본연의 성욕과 폭력욕을 파헤치는 동시에 집권자 및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했다. '구름'에선 소크라테스를 돈 안 갚는 기술이나 가르쳐 주는 궤변가로 희화화했고,'아르케이아인' '리시스트라타'(BC 411)등을 통해서는 오랜 전쟁에 지친 아테네 시민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권력싸움에 집착하는 지배계층의 이기주의를 질타했다. '비극은 현실을 외면하지만 희극은 직시한다'는 말은 그의 희극이 풍자와 해학을 통한 현실 지적에 충실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리시스트라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끝없이 계속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막기 위해 아테네 여성 리시스트라타가 스파르타 여성과 함께 '잠자리 거부운동'을 모의, 온갖 수단으로 남자들을 흥분시킨 다음 정작 다가오면 '전쟁을 끝내기 전엔' 어림없다고 버텨 평화협정을 이끌어낸다는 내용이다. '평화를 위한 성파업의 원전'으로 19세기엔 슈베르트의 오페라 '아내들의 반란'으로 만들어졌고, 20세기 후반에도 수시로 공연됐다. 국내에서도 93년 9월 가상의 남북한전을 다룬 '여성 반란'으로 산울림소극장에 올려졌고, 94년 초엔 극단 학전의 창단기념작 '아파트의 류씨스트라테', 97년 2월엔 극단 차이무의 '평화씨!'로 각색됐다. 지난해 말 수단 여성들이 19년 동안의 내전을 종식시키자며 리시스트라타 운동을 편 데 이어 이번엔 전세계에서 이라크전 방지를 위한 '리시스트라타 프로젝트'를 펼친다는 소식이다. 뉴욕의 두 여배우가 시작한 뒤 인터넷을 통해 확산돼 지난 3일엔 56개국에서 '리시스트라타' 낭송회 등이 마련되고,덴마크 행사에선 로라 부시, 세리 블레어,후세인 부인 등에게 성파업 동참을 공개 촉구했다는 것이다. 남성들의 패권주의와 전쟁광적 속성을 섹스보이콧으로 잡는다는 획기적 아이디어로 2천4백여년 동안 살아 숨쉬는 '리시스트라타'가 이번엔 과연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