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떤 母子 .. 이향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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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rurara222@yahoo.co.kr
며칠 전의 일이다.
늦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그 문제의 문은 우리 집 문이 아니라 앞집 문이었다.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말하는 소리가 다 들려왔다.
"○○경찰서에서 나왔는데요,임 아무개씨 계십니까?"
남자의 목소리였다.
앞집 할머니의 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뭐라고요?"
남자가 다시 물었다.
"임 아무개씨 계시냐구요?"
"몰라요,나는 시골할머니예요!"
그렇다.
앞집에 계신 할머니는 얼마 전에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앞집엔 아주머니 한분이 살고 계셨는데,아마도 그 아주머니의 친정어머니인 듯 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임 아무개씨 계시냐구요?"
"여기 안 살아요!"
"그럼 또 다른 임 아무개씨는요?"
"그건 우리 딸인데 지금 없어요!"
경찰서에서 나왔다고 밝힌 그 남자와 할머니의 목소리는 거의 동네 전체를 집어삼킬 듯 했다.
덕분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현관문에 달린 보안 창을 통해 앞집 문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찰했다.
일단 40대로 보이는 그 경찰은 답답한 듯 했다.
안절부절못하고 고개를 이리 기웃,저리 기웃거리면서 뭔가 한참 생각하는 포즈였다.
"잡아가려고 왔어요?"
경찰은 아니라고 했다.
조사할 것이 있어서라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엄청 커지면서 제발 잡아가 달라는 것이었다.
몰래 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걱정스러워졌다.
임 아무개씨를 모른다면서,저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아무래도 할머니가 실수를 한 거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다음 경찰의 반응이었다.
"싫습니다.조사만 할 겁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나는 외출을 하다 이 경찰이 동네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봤다.
잠복근무를 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밤에 집에 들어오는데,이 경찰이 막 앞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엄마,열쇠 어딨어?"
"뭐라고?"
"열쇠 어딨냐고?"
"니 안가지구 나왔냐?"
두 사람은 모자였다.
80이 넘은 어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40대의 아들과 함께 잠시 장난을 친 것이었다.
아마도 아들의 꿈이 경찰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할머니는 아들이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하니까 같이 놀이를 해준 것이었다.
멍해진 얼굴로 서있는 나를 보고 할머니가 귀가 쨍쨍하도록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가씨,우리 딸 보면,우리 시골로 내려간다고 좀 전해주시오 잉!"
그리고는 아들의 손을 잡더니 사라지셨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아들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