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는 예고된 악재는 악재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예고된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연설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무장해제시키겠다"고 전의를 다진데 이어 영국이 오는 17일을 최종시한으로 하는 대(對)이라크 최후통첩에 동의할 것을 유엔(UN) 안정보장이사회에 요청한 것.이번 주에는 이라크 전운(戰雲)이 그 어느때보다 증시를 쥐락펴락할 것으로 관측된다. 주식투자자들은 "예고된 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예고된 악재'는 악재가 아닌 까닭은 시장참가자가 악재에 미리 대비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경제상황,즉 보수화된 자금과 위축된 투자 및 소비,국제원유와 금 등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은 이미 전쟁리스크를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개전으로 주가가 추가하락해도 그 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이런 인식에서 나온다. ◆무엇이 다른가 SK투신운용 장동헌 주식운용본부장은 "전세계적으로 걸프전 때보다 유동자금은 더욱 풍부해져 있고 국내에서도 걸프 지역에서의 포성만 울리면 시중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면서 "그러나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인식은 큰 오판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걸프전 때와는 무엇이 다른가. 우선 90년대 호황을 이끌었던 IT(정보기술)경기의 버블(거품) 해소가 이제 막 시작단계라는 점이다. 둘째 90년대와는 달리 세계경제 기반이 많이 약화돼 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최근 '두 개의 달라진 세계'라는 보고서에서 "90년대 초에는 미국과 일본 유럽 등 다양한 성장엔진이 외부충격에 견딜 수 있게 했지만 지금은 미국의 단일동력 체제"라며 "막대한 쌍둥이적자(무역적자+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의 단일동력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전쟁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의 동의없이 미국과 영국만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막대한 전쟁비용을 미국이 거의 혼자 짊어지게 됐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과정에 있다는 점도 걸프전과는 다른 대목이다. ◆부각되는 한국만의 리스크 외평채 값과 원화 값은 최근 연일 곧두박질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위험에 북한의 핵위협이 가세하며 외국인은 2월 이후 7천7백70억원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가계부실의 위험이 어느 나라보다 높게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시장 대표주가 대부분 세계 IT경기에 민감한 업종에 속해 있고 유가급등에 따른 GDP 감소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게 한국이다. 서울투신운용 이기웅 주식운용본부장은 "전쟁발발이 불확실성 해소라는 생각보다는 전쟁 이후의 경기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전쟁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 기업실적 개선을 확인한 후 시장에 참가하는 보수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민하 기자 hah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