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대통령토론회 得? 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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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2시부터 1백분간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과 40명 평검사와의 대화는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국민적인 이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대화창구로 나섰다는 점에서 그렇고,그 상대가 평검사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회자를 두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대화를 주고받는 토론 형식도 과거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중소기업 사장이 사원들과 토론하는 문화도 정착되지 않은 한국적 현실에서 이날 토론은 마치 대기업 오너가 자신이 내린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놓고 평사원과 격론을 벌이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전달돼 '누가 옳은지'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토론석상에서는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가지 못했다.
평검사들은 '쓸데 없는' 질문을 내놓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노 대통령도 순간 순간 '짜증 섞인' 심기를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이고 우리는 아마추어'라는 한 평검사의 말에 "잔재주로 진실을 덮고 토론으로 여러분을 제압하려는 사람으로 비하하려는 것 같아 모욕감이 느껴진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격의 없는 토론에 나섰는데도 선뜻 박수를 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많은 시민들은 '대통령이 괜히 나섬으로써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노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일국의 대통령이 부하직원들(평검사)과 자존심 싸움을 벌인 것'이 국가 원수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그렇고,대통령이 협상창구로 나섬으로써 실무를 다루는 각 부처 장관의 힘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농업개방 노동문제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해 수 많은 이익단체들이 실무부서를 제쳐놓고 대통령을 협상 파트너로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이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는 것보다는 큰 틀의 정책을 제시하는데 그치고 실무자에게 실무를 맡길 때 더 효과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오상헌 사회부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