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인물들이 실재했던 그 시대로 돌아간듯한 생동감과 현장감을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역사소설이 꾸준히 읽히는 한 요인이다. "고려 무인시대"(이수광 지음,자음과모음,전3권)와 "시황제"(김성한 지음,달궁,전2권)등 오랜만에 눈길을 끄는 굵직한 역사소설 두 편이 나왔다. 두 작품 모두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역사속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려 무인시대"는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 경대승 최충헌으로 이어지는 고려중기의 무신집권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최근 모방송사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와 같은 시대를 다룬 작품이다. 1170년 "보현원의 참살"로 비롯된 무신집권기는 이후 약 1백년동안 나라 안팎으로 정변과 민란,몽고와의 항쟁등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는 시대였다. 후대 조선의 유학자들은 고려가 국가적 위기에 빠진 것이 무인들의 쿠데타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등의 사서에 정중부등 무신 집권자들이 불학무식하고 탐욕스러우며 후안무치한 반역자들로 그려져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저자는 무신정권에 우리 역사에 있어서는 안될 비극적인 정권이었다는 평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인집권자들은 오히려 나약한 고려 문벌귀족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민중들을 일깨운 시대정신의 대변인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던 우리 고유의 무술인 수박회를 여는 장면등 치밀한 고증으로 당시 고려사회를 생생하게 그린 점이 돋보인다. 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저자는 단편 "바람이여 넋이여",장편 "나는 조선의 국모다"등을 발표했다. 김성한의 역사소설 시황제는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 시황제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오늘날 중국의 원형(原型)은 시황제때 만들어진 것으로 2천여년이 지난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앙집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국가관도 시황제때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도로정비나 도량형통일등과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시황제는 사마천의 "사기"등 후대사서에 탐욕에 찬 폭군으로 주로 평가돼 왔다. 저자는 이런 시각에서 탈피해 진나라 멸망후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깎아내리고 폄하한 시황제의 모습이 아닌,객관적인 모습을 복원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사마천의 "사기"는 물론 "한서" "초사"등 많은 중국의 문헌들을 샅샅이 뒤졌다. 꼼꼼한 작가정신 덕분에 진시황부터 환관 조고,거상 여불위 그리고 항우와 유방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1919년 함경남도 풍산 출신의 저자는 지난 50년 단편 "무명로"가 서울신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주간을 역임하기도 한 저자는 "암야행" "바비도" "오분간"등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이성계" "왕건"등의 역사소설을 펴낸 바 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