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한미군 가치 계산법..李濟民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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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불바다'발언을 기억하는가.
1994년 북핵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북한대표의 발언이 온 서울 시민을 떨게 한 적이 있다.
그 뒤 제네바 합의로 그 발언은 잊혀진 듯 하더니 북핵 문제가 다시 떠오름에 따라 비슷한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게다가 주한미군에 대한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여차하면 미군이 철수할 것 같기도 하고,그렇지 않더라도 재배치를 비롯 감군,소파(SOFA)개정 등이 의제가 되고 있다.
당연히 한국민의 불안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경제계의 불안은 민감하다.
어떤 외국인회사는 미군이 남쪽으로 재배치되면 그 이남으로 옮기겠다고 한단다.
잘못하면 주가가 곤두박질할 것이고,외자의 철수로 97년 때보다 더 심한 위기가 일어날 수도 있다.
주한미군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안보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안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제발전이 안 될 것도 뻔하다.
지난 40여년 간 한국경제의 '기적'은 무엇보다 안보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고,주한미군은 그에 크게 기여했다.
문제는 94년 당시 '서울 불바다'발언에 대한 해석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의 호전성 공격성을 나타낸 발언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그러나 또 하나의 해석은 다르다.
북한은 핵을 협상용으로 쓰려고 하는데 미국이 자꾸 전쟁을 들먹이니,전쟁이 일어나면 평양은 '가루'가 되겠지만,서울도 '불바다'가 된다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의 핵 위기와 주한미군 문제도 어느 해석이 맞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북한은 핵을 협상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가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것은 북한이 공격적 목표로 핵을 가지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북한이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것처럼,안전보장과 경제적 활로를 얻기 위한 협상용으로 핵을 가지려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북한이 공격적 의도로 핵을 가지려 한다면 주한미군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주한미군을 증강하더라도 북한 핵 무장을 방지해야 한다.
미국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민은 북한이 핵 무장하더라도 동족인 한국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 것이라거나, 통일 후 그것을 승계할 수 있다는 오판을 해서는 안된다.
김정일 같은 사람이 권력을 잃을 처지가 되기라도 한다면 동족을 가리겠는가.
통일한국이 핵을 가진들 일본도 따라서 핵무장할 것이 뻔한데 안보에 도움될 게 없다.
반면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협상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이 경우 미국이 북한에 안전보장과 경제회생의 길을 열어주는 쪽으로 간다면 문제가 없다.
지금 북한과 미국이 으르렁거리는 것은 협상을 위한 숨고르기일 뿐이다.
협상과정도 순탄하지 않겠지만,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군 재배치나 소파개정 정도나 생각하면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더 큰 문제는 북한은 협상을 원하는데 미국은 전쟁으로 가려고 하는 경우다.
그럴 징후는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여차하면 선제 핵공격을 가해도 좋은 존재라고 한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이라크 사태에 나타나듯이 미국은 평화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는데도 전쟁으로 가려는 충동이 강하다.
이라크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미국은 평화적인 방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주한미군은 한국에 중요한 자산이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는 소수라도 자국 병사가 죽는 데 대해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서울 불바다'가 두려운 이유는 서울 시민 수백만이 죽어서가 아니라 이어서 일어날 전쟁에서 주한미군이 희생될 것을 겁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이 혈맹이어서가 아니라,냉정한 국제정치·경제적 계산 때문이다.
한국도 이제 그 정도는 계산할 줄 알아야 하는 단계가 되었다.
leej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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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