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세계 금융시장은 9·11테러 후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하나는 대규모 재정흑자 지속을 전제로 공공채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며,다른 하나는 미국의 재무부증권(국채)시장을 대체할 만한 자본시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요즘처럼 금융시장이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 정부는 이 교훈에 따라 30년만기 국채를 다시 발행해야 한다. 미 정부는 1990년대 후반 재정수지가 대규모 흑자로 돌아서자 앞으로도 흑자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 아래 2001년 10월부터 30년물 국채발행을 전면 중단했다. 흑자재정으로 국채발행규모를 줄일 수 있게 되자 우선적으로 국채 중 금리가 가장 높은 탓에 정부의 비용부담이 큰 이 최장기 국채발행을 중단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빌 클린턴 행정부는 재정흑자분으로 30년물 국채의 원리금을 우선적으로 갚아 나갔다. 그러나 상황은 지금 1백80도로 달라졌다. 미국은 다시 대규모 재정적자 상태로 되돌아 갔고,이라크전비 조달 등으로 재정적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나게 됐다. 미 정부가 30년물 국채발행을 중단한 뒤 시장에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중 가장 인기 있고 안전했던 30년물 국채의 신규공급이 끊기자 장기투자자들은 미 재무부보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발행하는 장기채로 눈을 돌렸다. 그후 세계 경기불황으로 기업 및 공공기관의 장기채들 중 상당수가 디폴트(채무상환불능) 위험에 빠지자 투자자들은 지금 막대한 손실위험에 노출돼 있다. 미국의 30년물 신규 국채발행이 중단된 후 투자자들은 장기 회사채 및 공채의 상대적 가치와 위험성을 측정할 수 있는 판단기준을 잃어 버렸다. 지금같이 국제정세가 불안한 때에는 미국채시장의 기능 정상화가 세계금융시장 안정의 필수조건이다. 장기국채가 발행됐을 때는 시장참가자 누구나 향후 장기금리의 패턴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회사채 및 공채의 장기자본 시장은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장기금리의 기준인 30년물 국채가 더 이상 시장에 공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국가방위 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처럼 장기국채 시장의 활성화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미 정부가 30년물 장기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장기 자본시장을 재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미국이 30년물 국채발행을 재개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강력한 채권시장은 월가의 금융시장 뿐만 아니라 일반 실물시장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채권시장이 활성화돼야 정부는 도로와 항만 등 인프라시설과 주택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으며,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활발한 국채시장은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낮춰주고,주택 소유비용도 줄여준다. 또 국채시장이 활성화되면 기업들은 사세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다. 지금은 미 재무부가 장기 자본시장과 경제 전체를 위해 국가채무 관리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때다. 이 정책의 재검토에는 30년물 국채의 재발행건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장기국채 시장의 활성화는 장기적으로 미국에 큰 득이 될 것이다. 정리=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 -------------------------------------------------------------- ◇이 글은 니컬러스 뉴바우어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회장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칼럼 'America needs the liquidity of the long bond'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