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朴聖一 <딜로이트 컨설팅 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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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미국과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한 엔론사태는 기업의 윤리경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그리고 신뢰와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부각시킨 사건이었다.
사실 기업윤리와 윤리경영의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나 겪는 문제다.
범죄 없는 사회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에 있다.
근대 경영이론이 생성되던 초기에는 이윤 극대화가 기업의 지상과제이자 최선의 목적으로 정의되었고,주식가치를 높이는 것이 경영자의 궁극적인 사명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은 고객 주주 종업원을 만족시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회적 공기(公器)로 인식되고 있다.
엔론은 원래 휴스턴내추럴가스라는 이름의 도시가스업체였는데 1986년 이름을 바꿨다.
당시까지만 해도 엔론은 건전하고 튼튼한 회사였다.
그러나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회계부정을 저지르기 시작했고,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것이다.
비용을 자산으로 처리하다 들통난 월드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가 버블이 생기면서 회계부정 규모도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미국에서 크게 문제가 된 회계부정은 인터넷이나 통신 등 뉴비즈니스 영역에서 주로 발생했다.
뉴비즈니스 영역에 대한 회계 규정이 생기지 않았을 때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 경영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미국에서 97년까지는 회계부정이 별로 나타나지 않다가 닷컴버블이 한창이던 98년부터 급증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엔론사태 이후 기업회계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급속도로 커졌다.
기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감도 그만큼 컸던 것이다.
결국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게 됐고,기업개혁법안 '사베인스 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이 탄생했다.
기업개혁법안까지 만들 정도로 미국 기업들의 기업윤리에 문제가 많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법안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을 법으로 규정한 것일 뿐이다.
다만 그동안 제대로 하지 않은 기업들에만 문제가 될 뿐이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투명한 기업경영을 자랑한다.
미국의 상장기업수를 10만개로 볼 때 과거 10년간 전년도 재무제표 수정 건수는 9백건 정도로 0.1%가 채 안된다.
어찌 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다시 말해 대다수 기업들은 기업윤리에 충실하고 회계도 투명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일단 발표된 재무제표를 수정할 경우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주가가 하락하고,집단소송이 이어지며,경영자 퇴진을 요구하는 등 시장에서 반응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이 때문에 문제가 있는 기업은 매우 짧은 기간에 퇴출된다.
시장이 곧바로 처벌하는 것이다.
한국은 외환위기와 IMF관리체제를 겪은 이후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사외이사제를 도입했는가 하면,회계기준 등도 강화했다.
어떤 제도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이 때문에 과거에 비해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몇가지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나 감독당국의 감시 수준이 높아지면 이를 회피하려는 수단과 방법 또한 개발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기업윤리와 기업경영에 대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글로벌화된 경제체제에서는 시장의 신뢰를 잃거나 투명성이 부족한 기업은 순식간에 퇴출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의 이윤추구와 윤리경영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다른 기업은 정직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기업만 윤리적으로,깨끗하게 경영하면 손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종종 윤리적 위험에 빠져 기업의 존립자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기업의 존재의미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왜 존재하고,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기업의 최고경영자라면 이러한 질문에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supark@d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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