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냈다]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 (3) 검도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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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찾아온 검도와의 인연 ]
김동수 회장은 '검도'회장으로도 유명하다.
대한검도회 회장 및 세계검도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통령기 쟁탈 전국검도대회를 신설하기도 했다.
회사와 공장을 오가며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김 회장의 열정도 알고보면 검도로 다져진 강인한 체력에서 비롯된 셈이다.
김 회장이 검도와 인연을 맺은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그가 부친의 부름을 받고 청주 고향에 내려와 회사일을 돕던 때였다.
공장에서 생각지도 않은 골칫거리가 생겼다.
인근의 불량배들이 공장 여직원들을 희롱하고 전기 스위치를 끄는 등 행패를 부렸던 것이다.
김 회장(당시 전무)을 빼면 사무실 직원이라곤 여직원 한 명과 급사가 전부였기 때문에 아무도 불량배들을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작은 체구의 김 회장이 회사일과 빚 걱정으로 48㎏(현재 65㎏)남짓한 체중을 유지하던 때였다.
직원들과 공장을 직접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궁리해낸 것이 유도였다.
그런데 막상 회사 근처 유도장을 찾았더니 '몸이 약해 유도는 안 되겠다.저기 건너 검도장에나 가보라'는 대답을 듣는다.
이렇게 찾은 곳이 당시 청주경찰서 옆에 있던 '상무관'.
김 회장은 아침 저녁으로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연약한 체력을 다져 강인한 신심(身心)을 만들기 전엔 나 자신과 회사를 지켜낼 수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고 말한다.
훈련이 너무 힘들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운검법(運劍法)에 들어가 머리 손목 허리기술 등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쌓아나갔다.
함께 배우기 시작했던 20여명 중 1년 뒤 남은 사람은 김 회장 한 명 뿐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검도는 도내 검도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할 만큼의 실력에 이른다.
이쯤되니 매일 아침 저녁으로 죽도(竹刀)를 메고 다니는 김 회장에게 불량배들이 저절로 겁을 먹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는 불량배들을 설득해 회사직원으로 채용하기까지 했다.
1960년대 후반 서울 연희동에 살 때도 그는 검도덕을 톡톡히 본다.
한밤중에 3인조 강도가 들어와 모두가 겁에 질려 있을 때 죽도를 손에 들고 소리를 지르며 번개처럼 뛰어나간 것이다.
이 모습에 놀란 강도들이 줄행랑을 친 일화는 가족들 사이에서 늘 회자된다.
1970년대 중반.
국빈들에게 한국산 본차이나를 내놓고 싶다는 육영수 여사와의 만남을 통해 김 회장은 한국도자기 본차이나를 청와대와 해외공관에 납품하게 된다.
이렇게 맺게 된 인연으로 김 회장이 육 여사에게 부탁한 것도 단 한가지였다.
바로 대통령 휘호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통령기 쟁탈 전국검도대회를 신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자주 시간을 내 검도연습을 하는데 신체단련뿐 아니라 정신수련에 최고의 운동"이라며 검도에 대한 애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