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은 미국의 엔론사태를 닮았다. 기업의 성장과정과 분식수법, 부당내부거래 등이 비슷하다. 부분적이지만 에너지기업이라는 업종상 공통점도 있다. 분식회계가 밝혀진 뒤 시장이 요동을 치면서 주가가 폭락한 점도 같다. 이 때문에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은 '한국판 엔론사태'로 비유된다. SK와 엔론은 1999년 1월13일 합작 지주회사 SK엔론(주)을 설립한 인연이 있다. SK(주)와 엔론이 각각 2백50억원씩 출자한 SK엔론(주)은 SK가스 대한도시가스 부산도시가스 등 11개 도시가스회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엔론이 파산함에 따라 채권단이 엔론 출자분 2백50억원을 회수해 갈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합작은 유지되고 있다. SK와 엔론은 정치권과 밀착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간 성장과정이 비슷하다. 엔론은 지난 85년 텍사스주에서 가스공급회사로 출발했다. 94년 전기사업에 진출했고 99년엔 '엔론온라인'이라는 상품거래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이 과정에서 엔론의 레이 회장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권이양팀 자문역을 맡을 정도로 정치권과 가까웠다. SK글로벌 역시 56년 선경직물로 출발,선경산업(70년) 선일섬유(76년) SK유통(99년) SK에너지판매(2000년) 등을 흡수합병하면서 커나갔다. 그룹차원에선 80년에 대한석유공사(현 SK)를, 94년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정부로부터 인수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렸다. 분식수법이나 부당내부거래도 비슷하다. SK는 오너가 계열사와 부당내부거래를 했고, 엔론은 자회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경영진이 이익을 챙겼다. 2001년 12월2일 파산신청을 낸 엔론은 39억달러의 차입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았다. SK글로벌도 1조1천8백81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두 기업의 차이점은 회계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감사조서 등 분식회계 관련 서류를 모두 파기했느냐(엔론), 1백여 상자나 되는 관련 서류를 문서보관창고에 쌓아뒀느냐(SK글로벌)일 뿐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차입금 숨기기는 분식회계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수법이다. SK글로벌과 엔론은 거대기업으로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그 이면에는 구멍난 재무제표가 있었다"고 말했다. SK글로벌이나 엔론사태는 분식회계가 시장의 불신을 키운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건이다. 엔론사태 이후 미국기업 회계전반에 대해 신뢰성이 상실되면서 국제자본의 탈 미국화 현상이 일어난 점에서 그렇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 이후 주식 채권 환율시장이 요동을 치는 것도 시장의 불신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H투신운용 관계자는 "이제 초우량기업도 투자하기가 겁난다"며 "국내투자자뿐 아니라 외국인투자자도 등을 돌려 시장이 붕락의 위기를 맞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제의 심장부인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투명회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