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개혁'의 쌍두마차 역할을 맡을 금융감독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새 정부의 기업 및 금융개혁 정책의 방향과 강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정재 금감위원장 내정자와 강철규 공정위원장의 성향으로 볼 때 '강도높은 개혁'보다는 '시장 안정'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이 위원장 내정자는 '개혁성'보다는 '합리적 업무처리 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고, 강 위원장도 취임 일성으로 '개혁 속도 조절'을 거론하고 나서는 등 '선(先)안정.후(後)개혁'이라는 큰 줄기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기업과 시장이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는 수준에서 중단없는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속도는 조절될지언정 '개혁' 자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추진될 전망이다. ◆ 금융감독은 시장안정에 무게 이 금감위원장 내정자는 정통 재무관료 출신의 금융정책통으로 '시장 안정'을 책임질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옛 재무부 이재국에서 20년 넘게 근무한데 이어 예금보험공사 전무, 금감원 부원장,금감위 부위원장, 재경부 차관을 차례로 거친 경력이 말해 주듯 금융 실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관료 출신이기 때문이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도 이 위원장 내정자 인선 배경과 관련, "재무부.공정위.금감위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금융통으로서 금융분야는 물론 재정정책 등 경제 전반에 관한 전문 지식과 업무능력을 갖춘 점이 높이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개혁성' 대신 '안정'에 무게를 두고 금감위원장 인선이 이뤄졌음을 청와대가 시인한 셈이다. 이같은 고려 때문에 한때 유력 후보로 거명됐던 경제기획원 출신 이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이 막판 선택에서 제외됐다는 후문이다. SK글로벌 분식회계 파문을 어느 정도 수습하고 물러난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도 "(내 후임자는) 금융시장을 아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적극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위원장 내정자는 '안정형' 선택에 걸맞게 임명 사실이 발표된 직후에도 "아직 금융감독정책 방향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금융개혁정책의 강도는 부위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공정위가 '개혁' 위원장에 '안정' 부위원장 구도라면, 금감위는 '안정' 위원장에 '개혁' 부위원장 구도로 개편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서다. 일부의 관측대로 이동걸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과 같은 개혁 성향의 인사가 부위원장에 전격 선임된다면, 개혁 강도는 지금의 예상보다 훨신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기업 개혁도 속도 조절론 대두 기업규제 정책의 주무 부처인 공정위를 맡은 강 위원장은 민간 시절 '재벌해체' '전경련 해체' 등 다소 과격한 주장을 제기해왔다. 강 위원장은 이에 대한 시장의 부담을 의식한듯 취임 일성으로 '개혁 속도 조절'과 '예측 가능한 개혁'을 강조했다. 그가 취임 후 약속한 사항은 세 가지다. △예측 가능한 개혁을 추진하고 중장기 개혁 일정을 공표하며 △개혁 방법은 대화를 통해 찾아나가고 △정치적 목적에 의한 조사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경제상황이 상당히 어렵다"며 "개혁의 방향과 속도에 대해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 후퇴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99년 5월 한국경제연구원 토론회에 참석, "정부가 재벌의 반발에 밀려 문제해결을 미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었다. 이 때문에 경제계는 강 위원장이 지금은 '속도 조절'을 강조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본격적인 개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2일 고건 총리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로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위 부당내부거래 조사 일정을 조정토록 하겠다"고 말하자 강 위원장이 곧바로 "예정대로 2.4분기(4∼6월) 내에 하되, 조사 착수 시기는 5월이나 6월로 옮기고 대상 기업도 혐의있는 기업부터 우선적으로 한다는 것"이라고 해명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고 총리와 다른 의견으로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공정위 창립 22년 만의 첫 민간 출신 사령탑인 강 위원장은 자신을 '합리적 개혁주의자'로 자평한다. 그러나 정 인사보좌관이 "경실련에서 경제정의연구소장을 맡아온 강 위원장은 경제정의와 반부패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대표적 개혁 인사"라고 밝혔듯이, 그의 인선 자체를 곧 강력한 재벌개혁 메시지로 봐야 한다는게 재계의 중론이다. 김수언.박수진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