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시스템 혁신을..李昌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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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기조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의 활력은 얼어붙고 무역수지 및 외국인투자도 악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 당국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세계경기의 불황과 이라크 및 북한 핵문제 등 외부요인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경제 문제의 상당 부분은 대외적이고 순환적인 요인보다는 우리 경제시스템과 정책에 있다고 봐야 한다.
경제위기 우려를 자아냈던 SK글로벌의 분식회계도 우리 내부의 문제이며,잠재적인 경제불안 요인인 가계부채와 신용카드 문제도 카드사 및 개인들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 당국의 무책임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만성화된 이공계 기피현상은 물론이고,금융불안에 이어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산업공동화와 경쟁력의 위기도 우리 내부의 문제다.
정작 위기의 원인은 우리의 낡은 경제시스템과 이에 대한 무신경에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본질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를 고치고,위기의 반복과 성장의 둔화를 막기 위해서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혁신과 정책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경제의 내실을 우선하는 경제정책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의 내실은 결국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이며,오늘날 이들의 경쟁력은 기술혁신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경제개발기 이후 산업과 기술을 중시하는 경제정책시스템은 크게 약화됐고,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중심의 경제정책시스템으로 급속히 전환됐다.
금융논리가 주도하면서 산업 등 실물부문의 논리는 그 목소리를 잃었다.
관치금융과 재정을 통해 돈줄을 조절하면서 금융시장과 경기문제에 치중하는 금융중심의 경제정책시스템이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고려에 익숙한 고위경제관료들에 의해 더욱 심화됐다.
경제의 경쟁력과 관련된 정책은 경기문제 등에 대응하는 정책과는 달리 중장기적 시각이 필수적이다.
자연히 단기간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산업경쟁력 관련 정책들보다,코앞의 경기문제 등 당장 생색이 날 수 있는 정책에 매달리는 것이다.
전문성에 기초한 경제관료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 등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만큼이나 기대하기 어렵다.
단기적이고 미봉적인 문제해결에 치우친 경제정책시스템을 고치기 위해서는 확실한 국가경제의 좌표와 이를 챙기는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이 경제개발의 성공에는 박정희정부의 '수출입국'이라는 경제모토와 강력한 정책추진이 있었고,성장의 부작용으로 치솟던 물가를 잡은 데에는 '물가안정'이라는 전두환정부의 경제모토가 있었다.
이번 참여정부의 경제모토에는 최소한 다음 두 가지가 포함돼야 한다.
그 첫째는 실물부문의 경쟁력 확보다.
기업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강력한 기술혁신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과거 압축성장의 경험을 살려 압축기술혁신을 위한 국가전략을 짜야 하며,산업기술과 과학기술의 시너지 창출이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이와 함께,부처이기주의와 정책경쟁을 막기 위해 중립적이고 전문성을 지닌 기술혁신 추진기구가 있어야 하며,과거 수출입국의 경우에서 보듯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둘째는 경제 투명성의 강화다.
우선 금융감독시스템이 제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외환위기까지 겪었지만 우리의 금융감독기능은 낮은 수준이다.
각종 주가조작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고,기업의 분식회계는 일상화돼 있다.
금융논리 중심의 경제시스템 속에서 금융감독기관들과 금융회사들이 한 식구처럼 안주해서는 곤란하다.
이와 함께,기업과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 등 조세질서도 바로잡아야 한다.
참여정부는 경제의 껍데기만 관리하다가 지나가는 정부가 아니라 경제시스템의 혁신을 이루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실업이 분배 악화의 최대 적임을 고려할 때 참여정부가 강조하는 분배 개선도 결국 기술혁신을 통한 투자 확대와 기업활력의 회복에 달려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이 금융논리에 길들여진 정책참모들에 둘러싸여 산업과 기술혁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drcylee@kgs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