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벌어질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적법성이나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전쟁과정에서 이라크의 유엔결의 위반이 입증되면 사후에라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견해가 대두하고 있다. 현실주의적 성향의 국제법학자들과 국제정치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런 논리는 기술적으로 볼 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유엔 헌장이나 유엔 결의에 명확한 근거를 두고 있지 않아 적법성은 없다 할지라도 미국이 내세운 전쟁명분이 옳은 것으로 판명된다면 정당성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소보 전쟁의 경우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위협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추진됐지만 이 전쟁이 정당하지 않은 전쟁이라는 주장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유엔 헌장이 인정하고 있는 무력사용의 요건은 임박한 위협에 직면해 자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거나 안보리가 승인했을 경우 등 단 두 가지다. 코소보 전쟁은 어느쪽에도 해당되지 않아 `위법'이지만 세르비아의 인종청소 등 반인도적 잔혹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이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정당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전쟁명분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은닉과 테러단체 지원이다. 테러단체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연계는 전쟁을 통해서도 밝혀지기 어렵지만 대량살상무기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선 이라크가 전쟁과정에서 미군을 향해 생물, 화학무기를 사용하거나 걸프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쿠르드족 반군이나 국내 저항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독가스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라크 전쟁을 앞장서 반대해온 프랑스도 이라크가 생물,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할 경우 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미군이 전쟁 중이나 종전 후 이라크가 은닉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뉴욕 타임스가 18일 보도한 대로 미군이 쿠웨이트에 이동실험실을 갖춘 대량살상무기 수색전문 부대를 배치할 만큼 벌써부터 이라크내 대량살상무기 색출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문제가 전쟁의 정당성을 판가름할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유엔 안보리 논의과정에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결정적 정보를 보유한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끝내 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전쟁과정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겠다는 의도였던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미군이 사상 최초로 종군기자들을 최일선 전투현장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방침을 세운 것 역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고 이를 "미군의 자작극"이라고 덮어 씌우는 이라크의 공작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또 후세인 대통령이 자진 하야하거나 쿠데타로 축출되더라도 미군을 이라크에 진주토록 할 방침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밝혔다. 이라크 사회의 안정과 민주 정권 수립 등이 이유로 거론되지만 이 또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라고 타임스는 지적했다. 앤-메리 슬로터 프린스턴대 우드로 윌슨 국제대학원 원장은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코소보 전쟁이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이라크의 대량살상파괴무기에 대해 논란의 여지없는 증거를 찾아낸다면 이라크 전쟁도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슬로터 원장은 "설사 이런 증거가 없더라도 미국과 동맹국이이라크 국민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이라크 해방 후) 유엔으로 즉시 돌아가 이라크재건에 대해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라크에 대한 무력개입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베트남전 때와 비슷하게 이라크 민중의 끈질긴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면 `명분없는 전쟁'에 대한 국내외의 저항은 점점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라크 군대보다는 이런 시나리오라고 볼 수도 있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