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유명한 명제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상기시킨다. 가스파 노에 감독의 신작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도 앞으로만 전진하는 시간의 비극성을 탐구하고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자막처럼 주인공 남녀의 행복은 한순간의 방심으로 불행으로 변질되지만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과도한 강간 폭력과 이를 극단적인 카메라워킹으로 잡아낸 실험성으로 인해 첫 30분간 관객의 불쾌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이후 관객들은 안정감을 서서히 찾아가지만 극장문을 나설때까지 불쾌감이 말끔하게 가시지는 않는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공개됐을때 일부 관객들은 상영중에 자리를 떴다. 도입부는 두 남자가 호모들의 소굴에서 한 남자의 얼굴을 박살내는 참경이다. 영화는 이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사건의 내막을 추적한다. 시간의 본질과 정면 대결해야 문제의 진상을 파헤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런 구성은 이창동감독의 "박하사탕"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에서도 채택됐다. 과거를 소급해 보니 참경의 원인은 마르쿠스(뱅상 카셀)의 애인 알렉스(모니카 벨루치)에 대한 치한의 강간이다. 장시간의 폭력장면에 이어 이 장면도 9분간이나 지속된다. 하지만 이후 관객의 인내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는 "센세이셔널리즘"에 기댄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미모의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를 한 남자가 철저히 능욕하는 장면은 도달하기 어려운 여인을 정복하고픈 남성의 치기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주인공 세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는 세가지 타입의 섹스관계를 대변한다. 알렉스의 전애인 피에르(알레르 듀 퐁텔)는 애인의 입장에 지나치게 신경쓴 나머지 절정에 이를 수 없고 이로써 애인을 잃고 말았다. 알렉스의 현재 애인 마르쿠스는 양측이 교감해 함께 오르가즘에 오른다. 반면 알렉스의 강간범은 지나친 이기심으로 섹스를 폭력으로 변질시킨다. 화면은 암흑에서 점차 광명으로 바뀐다. 도입부의 폭력장면들은 어두컴컴하고 지독히 흔들리는 장면으로 광란의 심경을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은 화창한 날씨로 행복을 드러낸다. 4월4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