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은 따사로운데 마음은 매서운 추위를 타고 있다.


미.이라크 전쟁, 대북문제 등 안팎에서 휘몰아치는 악재에 경제뿌리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IMF 때보다 어렵다'는 것이 생활현장의 요즘 표정이다.


보통사람들로선 어느 것 하나 그 진로를 예측하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기에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확실한게 있다.


봄은 틀림없는 봄이고, 지금은 동백 매화에 이어 봄꽃릴레이의 바통을 이어받은 산수유 철이라는 사실.


불안한 마음은 집안에 묶어두고, 노랗게 물결치는 산수유 꽃무리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지리산 서쪽 끝자락의 구례군 산동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산동면은 국내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


들머리의 지리산온천단지에서 꼭대기 상위마을로 오르는 10여리 길 주변이 온통 산수유 천지다.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산수유꽃 노란색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하나하나의 꽃은 너무 작아 보잘것 없지만, 그 샛노란 꽃부리를 한꺼번에 펼쳐낸 모습은 일상을 잊게 할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산동면의 산수유는 중국의 산둥성에서 건너왔다고 전한다.


옛날 중국 최대의 산수유 산지인 산둥성의 한 처녀가 이곳으로 시집올때 가져온 것을 심은게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것.


19번국도 밤재고개를 넘어 지리산온천단지로 들어가기 전 길 건너편에 최초의 산수유 나무를 볼 수 있다.


산동이란 면의 이름도 산둥성의 산둥에서 따왔다고 한다.


산동면 중에서도 산수유가 좋기로 이름난 곳은 만복대 기슭의 상위마을.


임진왜란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자리잡으면서 1백가구가 넘는 큰 동네를 이루었다가 한국전쟁통에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20여가구만이 지키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 마을 전체를 줄기 굵은 산수유 나무가 뒤덮고 있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보면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마을 안 길과 얕은 개울가에서 감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을 풍긴다.


안에서 나무를 보는 것과 밖으로 나와 숲 전체를 보는게 다른 것과 같은 이치.


언뜻언뜻 비치는 지붕선, 가지각색의 등산복 색상과 어울린 산수유 꽃무리가 더욱 화려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고로쇠물 한 잔과 부침개 한 접시가 더해지면 신선이 부러울게 없겠다.


4월 초순까지 샛노란 마을은 10월께 발갛게 변한다.


꽃부리마다 맺힌 열매가 빨간 옷이 되어 마을 색상을 바꿔 놓는 것.


마을사람들은 이 산수유 열매를 따다 씨를 발라내고 말린 과육을 한약재로 내다 판다.


산수유는 십전대보탕처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육미지황탕의 으뜸 약재로 쓰이는 등 신장기능을 강화해 정기를 돋워주는 약재로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산수유의 약효를 다소 과장해 전해져 오는 얘기가 있다.


옛날에는 아낙네들이 이빨로 깨물어 산수유의 과육과 씨를 분리했다.


아낙네들은 입에 남은 과즙으로 젊음을 유지했다.


입술에는 과즙이 남아 있을수 밖에 없는데 바깥양반들이 입맞춤으로 오래오래 정력을 발휘, 부부간 금슬이 좋았다는 우스갯소리다.


요즘에는 과육분리작업을 기계로 해 아쉬워하는 남정네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나오는 산수유는 국내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산수유를 팔아 모은 돈으로 아이들 대학공부까지 시켰다고 해서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라며 아낀다.


행정구역상의 이름 대신 그냥 '산수유 마을'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구례=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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