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rurara222@yahoo.co.kr "바람이 분다,살아봐야 겠다...바람이 분다,살아봐야 겠다...(중략)... 멈추면서,그리고 나아가면서,나는 저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대학 시절 은사님이 쓰셨던 "순례의 서"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17년전 문학이,그중에서도 "시"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동아리를 만들어,쓴 시를 서로에게 보여주거나,누군가의 시를 읽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며,이 세상에 "시"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졸업을 하고 몇 년 뒤,각자 먹고 사는데 바빠지면서 점점 시라는 것을 잊어갔지만,그래도 이따금 시집이라는 것을 샀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서로에게 "그 시 읽었니?"라는 안부를 묻기도 했었다. 그리고는 또 시간이 흘렀다. 누구는 엄마가 되고,누구는 바쁜 직장인이 되면서 시보다는 가정을,일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꿈이었던 "시"는 언제부턴가 배고픔의 대명사가 되었고,우리가 "시"를 잊어가듯이 세상도 "시"를 대접하지 않았다. 동기 중에 누군가 시집을 냈다고 하면 "와,대단하다!"하면서도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시"가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점점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그때의 동아리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는데,친구가 전화 끝에 한 말이 가슴을 울렸다. "어젯밤에 남편이랑 막 싸우는데 갑자기 시 한 구절이 생각나는 거야,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그리곤 더 이상 싸움을 하기가 싫어지더라,지난번에는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호하는데,갑자기 최하림 선생님 시가 생각나더니만..." 그동안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으며 달려왔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를 잊었지만,그 착한 "시"는 우리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곤 가장 힘이 들 때,저절로 불쑥,튀어나와서는 마음을 삭혀주고 있었다. 친구와의 전화를 끊고,오랜만에 책장에 꽂아두었던 시집 한권을 펼쳤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