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기업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성공한 기업의 사례보다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기업들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분석해야 같은 길을 반복해서 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업체인 하우리의 권석철 사장(33)은 지난 98년 창업을 앞두고 이런 생각에 골몰했다. 당시 29세의 피끓는 젊은이였던 권 사장이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제품의 품질 개발보다는 로비력만으로 덩치를 늘려가는 기업의 전철만은 절대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솔직히 애초에 편법을 부릴 만한 든든한 자금이나 배경이 없었던 것도 기술로만 승부를 걸 수 있었던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던 권 사장은 창업 얼마후 경영자로서의 가치관을 돌이켜보는 작은 사건을 겪게 된다. 당시 그는 정부 기관 중 한곳에 백신제품을 제안하기 위해 담당자를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담당자는 만나지 못하고 담당자의 아랫사람이라는 직원과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제품 제안서와 백신 제품을 직접 들고 찾아갔던 권 사장이 들은 첫마디는 "우리 담당자께서는 골프를 즐겨치시니 골프장에서 이번 제품 도입건에 대해 얘기해 보자"는 것이었다. 권 사장은 물론 담당자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했지만 결국 그 기관에는 제품을 공급하지 못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업무상 만난 지인과의 대화중에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지인은 대뜸 권 사장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이랬다. "당신은 한 기업을 이끌고 수십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CEO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비록 스스로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껄끄러운 과정을 거치더라도 기업과 직원들을 위해서는 매출을 올리는 것이 우선이다.당신은 깨끗하고 정직한 직원으로서의 자격은 있는지 몰라도 훌륭한 CEO의 자격은 없다." 권 사장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경영자라는 직책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가를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날 회사에 들어온 그가 본 것은 밤늦도록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권 사장은 또한번 굵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이들에게 과연 나는 어떤 대표일까'이런 생각이 끝도없이 스쳐갔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그날따라 혼자 거푸 마셨던 기억을 그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권 사장은 이따금 경영인으로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최소한의 균형잡기가 필요할 때는 자신을 눈물짓게 했던 그 지인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영업을 위해 무리한 편법까지 동원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진정 나를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을 위하는 길은 오랫동안 건재할 수 있는 튼튼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그는 지금도 훌륭한 CEO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