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던 날의 베이징 외교부 브리핑실.평소 정례 브리핑보다 훨씬 많은 외신기자들이 중국의 입장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쿵취안(孔泉) 외교부 대변인은 입을 열자 마자 미국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미국은 군사행동을 즉각 중단하고 유엔에서 정치적으로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했다. 어조도 단호했다. 늘 웃음 띤 얼굴로 부드럽게 답변해 오던 종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기자들은 의외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깊은 유감이다'라는 정도의 성명을 생각했던 대부분 외신기자들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베이징 외교소식통도 "중국 외교부의 이날 성명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외였다"며 "미국이 아팠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갓 출범한 새 정부로서는 내정 불간섭과 평화공존이라는 중국 외교의 원칙을 대내외에 천명하면서 경제대국뿐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국'임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외교부의 성명은 이달초 당시 외교부장이던 탕자쉬안 국무위원의 기자회견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창러우빙지(强柔幷濟·강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서로 돕는다)가 중국 외교를 대표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이날 강한 톤으로 미국을 비난한 것은 강온 양면 외교를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이라크 전쟁이 개전되기 이전에도 "이라크 문제를 유엔의 틀 안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고,이날 성명은 그 연장선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톤'은 이날과는 달리 부드러웠다는 게 외교가의 공통된 견해다.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 반대입장을 천명했을 때도 그들과 '같은 입장'이라고 했지 미국을 반대한다고 직격탄을 날리지는 않았다. 온건한 외교전만 펼쳤다는 얘기다. 더욱이 중국이 이날 '강한 외교'를 보여줬지만,러시아나 프랑스처럼 최고지도자의 입을 통하지 않음으로써 수위를 조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명분과 실리를 챙기면서 강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는 중국의 줄타기 외교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