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왜 경제가 불안한가..柳東吉 <숭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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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국내 금융시장이 예상과는 달리 안정세를 나타냈다.
국제 원유가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불안심리가 전쟁 조기종결 기대감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단 급한 불은 꺼진 것 같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전쟁이 빨리 끝나 세계경제 환경이 비록 호전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안도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한국경제의 불안요인은 이라크 전쟁과는 상관없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북핵(北核)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되면 한국경제에 어떤 파동이 일어날지 예상하기조차 두렵다.
한국경제 불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첫째,경제불안은 안보불안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북핵문제와 이미 노출된 우리 사회의 반미(反美) 감정 등으로 한·미관계에 틈이 생겨 이게 안보불안 경제불안으로 이어진 것이다.
경제문제는 외교·안보문제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북핵문제가 현안으로 남아있고,미군 철수를 주장하는가 하면 정부의 정책방향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한국에 투자하겠는가.
이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전망을 하향 조정한 것처럼 외국 신용평가기관의 움직임도 걱정되는 변수다.
둘째,경제불안은 새 정부의 기업정책과 관련돼 있다.
우선 법인세 인하문제에서 보듯 여러 차례 나타난 부처간 정책혼선은 불안심리를 부추기는데 한몫을 한다.
정부안에서 정책을 충분히 조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밖으로는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외국에서는 새 정부의 경제창구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노사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자세도 걱정이다.
두달 이상이나 끌던 두산중공업의 노사분규가 정부 개입으로 타결됐다.
SK사태가 터진 후의 일이었다는 것은 새겨볼 일이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깨졌다.
불법파업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더욱이 정부가 단위 사업장에 직접 개입하는 선례도 남겼다.
이런 과정을 재계뿐 아니라 해외투자자들이 지켜봤다.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게 어찌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모습일 수 있는가.
SK 분식회계사건은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시장질서 바로잡는 일은 조용하게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을 전면적으로 사정(司正)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나서서 기업의 사정 속도를 조절하라는 말까지 했을까.
최근 전임 경제부총리들에게서 '경제개혁은 기업이 감당할 선(線)에서 해나가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공정위의 대기업에 대한 출자총액규제 강화방침은 반(反)기업적이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부채비율 1백%를 밑도는 기업은 출자규제를 받지 않게 돼있다.
이 규제제도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더라도,현행 규정을 충족시켰는데도 규정을 고치면서까지 규제를 연장하려는 것은 정부 스스로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업의 현금 보유는 사상최대인 46조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3조원이 증가됐다는 것이다.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고 투자에 나서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조업 설비투자는 최근 5년간 거의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이 투자를 안 하는데 무슨 수로 성장잠재력이 제고될 수 있는가.
한국경제의 위기여부를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경제위기를 과장하거나 방치함으로써 개혁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그런가.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위기의식은 있을 수 없다.
개혁은 지속돼야 하고,기업의욕도 부추겨야 하고,경제도 살려야 한다.
그러기에 일을 추진하는 순서와 방법이 정교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분명한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
정책혼선은 안된다.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불안심리부터 털어내야 한다.
아무리 경제와 기업을 살리겠다고 해도 구체적 정책이 따르지 않으면 그건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정책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말이 많을수록 혼란만 가중된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