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발표한 2002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1인당 국민소득(GNI)이 전년도 9천달러에 비해 11.3% 증가한 1만13달러로 집계되어 외환위기 5년 만에 1만달러를 회복했다. 1만달러시대를 달성한데는 3.1%의 원화절상이 한 몫 했지만,전년도에 비해 실질 GDP가 6.3% 증가한 것은 기대 밖의 선전이다. 내용적으로 제조업과 수출이 성장을 주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전반적인 세계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성과여서 값지다. 그러나 올해의 경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이라크 전쟁이 시작돼 가장 큰 불확실성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예상처럼 단기간에 끝날지 아니면 장기화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이 장기화되면 유가상승에다 달러 약세로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기에 끝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북한 핵문제라는 난제가 버티고 있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로 다시 불거진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투명성의 문제,뇌관으로 떠오른 가계부채와 신용카드문제도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새 정부의 기본적인 경제시각과 정책기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가계와 기업의 불안감은 높아지고,이것은 경제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낮은 소비자평가지수와 기업실사지수는 경제주체들의 체감경기가 하락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 최근호가 한국을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국가'로 보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이렇듯 낙관적이지 않은 대내외 경제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미래의 성장기반을 확충하는 장기적인 비전과 원칙 없이는 소득 2만달러시대는 고사하고 1만달러도 사상누각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성장 잠재력의 동인은 크게 자본 노동 기술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이 세 요소의 양적 질적 향상 없이는 장기적인 안정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제 역량을 자본 노동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먼저,자본축적은 기업의 투자활성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기업의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있어 성장잠재력이 약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기의 더블딥 현상과 장기적인 저성장 기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염려스럽다. 기업의 투자활동은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활발해진다. 시장경제의 근간은 '고용과 소득을 창출하는 기업의 경제활동'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정부는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기업의 미래 투자활동을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기업도 보다 투명한 경영을 해 신뢰를 회복하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해외직접투자 유치와 더불어 최근 국내 저축률 하락을 주도하고 있는 20∼30대의 저축증진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투자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두번째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다. 과거 4년 간 임금상승률은 생산성증가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소득 대비 임금수준도 주요 선진국보다 높아지고 있어 고임금 구조는 성장잠재력을 잠식할 위기에 있다. 이런데도 정부가 내놓은 노사정책의 지침은 전반적으로 노동계의 이익을 많이 대변하고 있어 현 경제인식에 대한 정확도에 의문을 갖게 한다. 적어도 소득 2만달러 이상 돼야 실현 가능한 요구에 대해 정부는 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경제력의 핵심은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이고 이것은 전적으로 기술개발 능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연구 개발 투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해 신기술을 적극 개발함으로써 경제성장 기반의 확충을 도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성장 동인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패러다임과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경제시스템을 한꺼번에 재정비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체계적으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의 초석을 다진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수요와 공급의 충격을 한꺼번에 막아내는 시스템은 없기 때문이다. 분배와 성장은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정책은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echah@mm.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