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경제부총리가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는 '재정의 탄력적 운용'방침은 당연하고도 옳은 방향이다. "3년 정도의 중기전망에 따라 재정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거나 "필요에 따라 연간 기준으로는 적자재정을 편성할 수도 있다"는 발언 역시 타당성이 있다. 경제부총리의 이같은 발언들은 정부가 경기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고 나름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는 면에서도 적잖이 다행스럽다. 금리가 이미 충분히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재정의 경기기능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기침체의 원인을 따지고 들자면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린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경기가 살아날 것인지 의심스럽고, 또 정부가 경기침체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동시에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도 누차 강조해왔듯이 경제는 각 주체들의 '경제하려는 자세'와 '동기부여' 없이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재정확대가 경기부양 효과를 갖는 것도 그것이 민간 투자를 승수적으로 유발해 내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민간기업들의 의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확대만으로 충분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민간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그에 부응해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소비활동에 참여할 가능성도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이 기업의욕을 꺾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정부가 내걸고 있는 개혁과제의 대부분이 기업 경영비용을 크게 높여놓고 있는데다 출자총액 한도제 등 각종 행정규제는 오히려 대폭 강화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추세다. 더구나 노동문제는 근로자측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경영자들은 투명성이란 이름 아래 경영자율성까지 적잖이 침해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더구나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미국 등 국제사회와 상당한 견해차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내외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외국인 투자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고 최근에는 국가 신용등급의 하향조정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국면이다. 단순히 재정지출을 늘리고 돈을 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는 개혁과제를 재정비하는 등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데서부터 경기부양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재정지출을 늘리는 일보다 더욱 시급하다.